필레 신전의 벽에서
나일강 상류에 작은 섬이 있고, 섬에는 여신 이시스를 모시는 필레 신전이 있습니다.

필레의 이시스 신전, 제1탑문. 20세기에 아스완 댐을 지을 때 신전 전체가 해체되어 가까운 더 높은 섬으로 옮겨졌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Vyacheslav Argenberg 촬영, CC BY 4.0
394년 8월 24일, 에스메트아홈이라는 사제가 신전 벽에 신의 상을 새기고 짧은 글을 덧붙여, 이 명문이 "영원히 남기를" 빌었습니다.
그는 아마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알려진 마지막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명문입니다.

하드리아누스 문에 에스메트아홈이 새긴 신상과 곁의 상형문자, 394년. 새김이 정교하지 않아, 한 노인이 기억에 의지해 아는 글자를 마지막으로 한 번 쓴 듯합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Olaf Tausch 촬영, CC BY 3.0
이후 더 간편한 '민중 문자(데모틱)'로 쓴 낙서가 몇십 년 더 이어졌고, 알려진 가장 늦은 것은 452년 12월에 새겨졌습니다. 그 뒤로는 세상에 이 기호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822년까지, 꼬박 천사백 년 남짓.
쓰는 사람이 사라졌다
상형문자는 왜 끊어졌을까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필레의 그 명문이 새겨지기 몇 해 전에 일어났습니다. 391~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잇달아 칙령을 내려 이교 제사를 금지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상형문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원래 적었고, 주로 신전의 사제였습니다. 상형문자는 신성한 글자로 신전과 무덤과 기념비에 새겨졌습니다. 신전이 문을 닫고 사제가 대를 이을 수 없게 되자 이 기술은 이을 사람을 잃었습니다.
필레는 제국의 가장 남쪽에 있었고, 남쪽 부족과의 약속도 있어서 이교 숭배가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오래 버텼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명문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한 기둥 위의 세 겹 글자
필레 신전에는 이후의 일을 모두 몸에 적어 놓은 기둥 하나가 있습니다.

필레 이시스 신전의 기둥 하나. 위쪽은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가운데는 후세 사람이 그리스 문자로 새긴 낙서, 그 아래에는 기독교인이 돌에 십자가를 새기고 그 밑에 그리스어 기독교 명문이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Till Niermann 촬영, CC BY-SA 3.0
위에서 아래로 보면 아주 짧은 이집트 종교사입니다. 맨 위는 파라오 시대의 신, 가운데는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남긴 글자, 맨 아래는 새로 온 십자가. 위의 층을 깎아 낸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그 아래에 이어서 새겼습니다.
6세기에 이 신전은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상형'이 '알파벳'에 진 것이 아니다
이 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하나의 직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형문자는 너무 원시적이어서 더 진보한 알파벳에 도태되었다고.
이 직관은 두 가지 점에서 틀렸습니다.
첫째,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는 처음부터 단순히 '그림을 보고 글자를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표의와 표음이 섞여 있습니다. 올빼미를 그리면 올빼미를 가리킬 수도 있고, 그저 /m/ 소리 하나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소리를 적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문자가 어떤 유형이냐는 한 문명이 이어지느냐와 그렇게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한학자 존 드프랜시스는 1984년의 책에서 "한자는 순수 표의문자"라는 설을 특별히 비판했습니다. 한자에도 표음 요소가 많고, 한자가 이어져 온 것은 식자인을 끊임없이 길러 낸 관료와 교육 체계 덕이 크며 자형 자체에 무슨 마력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읽고 쓸 줄 아는 집단이 제도에 의해 단칼에 끊겼습니다. 상형문자는 더 나은 문자에 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도 있었고, 이집트 말도 남아 있었다
게다가 이집트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집트 말도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형문자가 끊어지기 전부터 이집트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 문자에 민중 문자에서 빌린 기호 몇 개를 더해 자기들의 말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콥트어입니다. 『성경』은 콥트어로 번역되었고 교회는 그것으로 예배하고 설교하고 필사했습니다.
7세기 중엽 아랍군이 이집트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몇백 년 동안 아랍어가 점차 관청에서도 장사에서도 일상에서도 쓰는 말이 되었고, 대부분의 이집트 사람도 서서히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콥트어는 거리에서 교회로 물러났고, 마지막에는 예배에서 읊어질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고대 이집트 문명은 언제 사라졌는가"를 물으면, 어느 층을 묻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상형문자는 4세기 말. 옛 종교는 거의 같은 무렵. 이집트 말이 일상 구어로서는 천 년쯤 더 뒤. 예배의 언어로서는 오늘도 아직 있습니다.
열쇠는 교회 안에 있었다
1799년 프랑스 병사들이 나일강 하구의 로제타 근처에서 비석 하나를 파냈습니다. 같은 내용이 세 가지 문자로 세 번 새겨져 있었습니다. 상형문자, 민중 문자, 고대 그리스어.

로제타석, 대영박물관 소장. 위쪽은 상형문자, 가운데는 민중 문자, 아래는 고대 그리스어. 내용은 사실 아주 평범해서, 기원전 196년 사제들이 프톨레마이오스 5세에게 바친 송사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Hans Hillewaert 촬영, CC BY-SA 4.0
그리스어 대조가 있으면 해독에 붙들 곳이 생기지만, 진짜 돌파에는 한 가지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 언어 자체를 아는 것. 프랑스 학자 샹폴리옹은 소년 시절부터 콥트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알아챘습니다. 상형문자 뒤의 언어는 콥트어의 조상이라는 것을.

샹폴리옹(1790–1832), 레옹 코니에가 1831년에 그린 것. 그는 해독을 선언한 지 십 년이 못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흔한 살이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Léon Cogniet, 퍼블릭 도메인
1822년 그는 해독에 성공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거리에서는 이미 죽었고 교회에서만 읊어지던 언어가, 천사백 년 침묵하던 문자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역사로 되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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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은 탈사당했다"는 말에는 충격이 있습니다. 글자는 알파벳으로 바뀌고, 말은 아랍어로 바뀌고, 신은 알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집트 문명은 줄곧 껍데기를 바꿔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 시대조차 외부인의 지배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헬레니즘화, 로마화, 기독교화, 이슬람화, 매번 단절이 있었고 매번 연속도 있었습니다. 20세기 이래 이집트 정부는 파라오 문명을 국가 서사에 다시 모셔 왔습니다. 2021년에는 22구의 고대 파라오 미라가 카이로 거리에서 성대한 이사 행렬을 벌였습니다.
이 역사를 읽으면 저는 늘 한자를 생각합니다. 한자가 끊어지지 않은 것은 상형문자보다 타고나게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천 년 동안 줄곧 누군가 가르치고 배우고 시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지면 한자도 어느 사당 안으로 숨어서 샹폴리옹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한 문명은 어느 순간에 죽는가. 그것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떠났을 때인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떠났을 때인가.
참고 자료
- 필레 신전 에스메트아홈의 낙서(394년 8월 24일); 필레의 가장 늦은 민중 문자 낙서(452년 12월)
- 『테오도시우스 법전』 16.10.10–12, 391–392년 이교 제사 금지 칙령
- Champollion, Lettre à M. Dacier, 1822
- John DeFrancis, The Chinese Language: Fact and Fantasy, 1984
- 그림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적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