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인커의 논문 한 편
1930년 역사학자 천인커는 『칭화학보』에 「『삼국지』 조충·화타전과 불교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천인커(1890–1969). 십여 개 언어에 통했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도 읽을 수 있었다. 이 논문을 쓸 때 마흔 살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글은 누구나 아는 두 이야기를 다룹니다. 하나는 조충이 코끼리 무게를 다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명의 화타의 이야기입니다. 천인커는 이 두 이야기에 인도에서 전해 온 불교 이야기가 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독립된 정신, 자유로운 사상"이라고 썼던 이 학자는 말년에 두 눈을 잃었고 1960년대의 운동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1969년 광저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가설은 누군가 입증해 주기도, 뒤집어 주기도 기다리지 못한 채 남아 있습니다.
화타에 대해 그는 아주 대담한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화타"와 "아가타"
『삼국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타의 자는 원화이며 패국 초현 사람이다. 일명 부(旉)라고도 한다." 화타의 본명은 "부"이고 자가 "원화"였을 수 있습니다.
천인커는 "부"와 "원화"가 뜻으로 서로 맞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부"에는 펼치다, 길러 내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타"는 어디서 왔을까요?
그의 추측은 이렇습니다. 산스크리트어에 agada라는 말이 있어 뜻이 "약"이고, 불경에서 "아가타(阿伽陀)"로 음역된다. 고대 한어에서 "華"의 발음이 "伽"와 가까웠으므로 "화타"는 gada의 음역일 수 있다. 곧 이 의사의 솜씨가 신묘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외래의 "약의 신"이라는 뜻의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후세 사람이 그린 화타의 초상.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본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아직 다투고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그는 또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의 신기한 치료 사례가 불경에 나오는 인도 명의 기역(耆域, 지바카)의 이야기와 어느 정도 닮았다고 보았습니다. 훗날에는 화타의 "마비산"의 성분이 만다라(산스크리트어 mandārava)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 학자도 있었습니다.
이 가설은 성립하는가
이 말은 매력적이지만 학계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뤼쓰몐 같은 역사학자는 화타를 논하면서 이 해석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여럿 꼽을 수 있습니다.
- "타"를 사람 이름에 쓰는 일은 한나라 때 드물지 않았다. 진말한초의 남월왕은 조타(趙佗)였습니다. "한대 이전에는 타라는 이름이 드물었다"는 것으로 "타"가 외래 음역임을 증명하기는 단단하지 않습니다.
- 음역 대응에는 더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 두 글자의 고대 음이 산스크리트어 낱말의 뒤 두 음절과 비슷한 것은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결론짓기 어렵습니다.
- 이야기가 닮았다고 출처가 같은 것은 아니다. 명의 이야기는 여러 문명에서 비슷한 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난한 말은, 천인커가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았고 그것은 오늘까지도 가설이라는 것입니다.
몇몇 차용은 확실하다
그래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올 때 인도의 많은 것을 함께 가져온 것은 사실이고, 그중 일부는 논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 계율이 먹지 못하게 한 "오신채"가 있습니다. 파, 마늘, 부추, 달래, 그리고 "흥거(興渠)"라는 것입니다. 흥거는 한족 땅에서는 보기 드문데, 사실은 아위(阿魏)로, 중앙아시아가 원산이고 인도 요리에 흔히 쓰이는 향신료입니다. 한족 땅의 승려가 계율에서 "흥거"를 읽어도 평생 그것을 본 적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계율은 인도에서 그대로 옮겨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위의 수지. 이란 이스파한산. 불경에서는 "흥거"라 부른다. 오신채 계율을 평생 지킨 중국 승려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 그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Tricholome 촬영, CC BY-SA 4.0
언어의 차용은 더 많습니다. "찰나", "열반", "보살", "나한", "세계", "인과"……. 오늘날 중국어의 일상어 상당수가 불경 번역에서 나왔습니다.
더 깊은 것은 관념의 차용입니다. 도교는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윤회, 인과응보, 지옥 같은 관념을 흡수했습니다. 불교는 중국에서 유가의 효도와 중국인의 조상 제사를 흡수했습니다. 예컨대 "목련구모(目連救母)" 이야기는 불교의 천도와 중국인의 효를 하나로 빚어 냈습니다. 거기서 나온 우란분회는 훗날 도교의 중원절과 합류해 오늘의 "칠월 반(七月半)"이 되었습니다.

옛 판본 『목련구모』의 목판 삽화. 인도에서 온 천도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효자 연극이 되어 수백 년 동안 상연되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종교는 화물차
이 일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종교의 전파가 교리만 실어 나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물차 같습니다. 경전을 싣고, 또 언어, 의술, 향신료, 예술, 명절, 음식의 금기를 싣습니다. 차가 새 땅에 닿으면 어떤 짐은 그대로 내려지고, 어떤 짐은 개조되며, 어떤 짐은 그곳 사람들이 다른 용도로 씁니다.
화물차는 되돌아서도 달린다
이 차는 중국에 닿고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자는 이 짐을 다시 동쪽과 남쪽으로 한 구간 더 날랐습니다. 일본인, 조선인, 베트남인이 읽은 불경은 한역 불경입니다. "세계", "인과", "찰나" 같은 말이 한자와 함께 일본어, 한국어, 베트남어에 들어왔고, 발음은 각기 다르지만 쓰면 같은 글자입니다. 오늘 서울 사람이 "세계"라고 하고, 도쿄 사람이 "せかい"라고 하고, 하노이 사람이 "thế giới"라고 할 때, 말하는 것은 산스크리트어를 한 번 거쳐 온 같은 "세계"입니다.
화타의 이름이 산스크리트어인지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국 명의의 이름이 인도에서 왔을지 모른다"는 가설 자체가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토박이"라고 여기는 많은 것의 뒤에 문명을 넘나든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뒤집어 보기
그러나 이 일깨움도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중의학은 전부 인도에서 전해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틀렸습니다. 중의학의 핵심 이론(음양, 오행, 경락, 장부)은 인도 의학에서 대응하는 출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차용은 진짜이지만 차용이 통째로 베끼는 것은 아닙니다. 한 문명이 외래의 것을 받아들일 때는 흔히 자기 뿌리에 접붙이는 것이지 뿌리째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는 말이나 풍습 가운데 사실은 먼 곳에서 온 것은 무엇입니까?
참고 자료
- 천인커 「『삼국지』 조충·화타전과 불교 이야기」, 『칭화학보』 제6권 제1기, 1930(훗날 『한류당집』에 수록)
- Erik Zürcher, The Buddhist Conquest of China, 1959
- 『삼국지·화타전』; 불교의 "오신채"와 흥거(아위): 통행 문헌과 상식
- 천인커의 생애: 통설의 사실
- 이미지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