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에 어긋나는 결말
13세기에 몽골 제국은 당시 알려진 세계의 거의 절반을 정복했습니다. 태평양에서 동유럽까지, 시베리아에서 페르시아만까지입니다.
"강자가 신앙을 수출한다"는 직관대로라면 정복당한 사람들이 정복자의 종교로 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대로 갔습니다. 몇 세대 뒤 몽골 지배자들이 잇달아 정복한 땅의 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개종한 종교가 같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서쪽: 이슬람
페르시아에서는 칭기즈 칸의 손자 훌라구가 일 칸국을 세웠습니다. 초기 일 칸들은 샤머니즘과 불교를 믿었고 기독교에도 꽤 우호적이었습니다.
1295년 가잔이 즉위하면서 공식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개종한 첫 일 칸이었고, 이어서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궁정과 군의 장수들에게도 개종을 요구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재상이자 역사가인 라시드 앗딘이 명저 『집사(集史)』에 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북쪽의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에서는 우즈베크 칸이 1313년에 즉위해 이슬람을 밀어붙였고, 그 김에 정적을 숙청했습니다.
몇 세대 뒤 서쪽의 몽골 후예들은 페르시아식 이름을 쓰고 튀르크어나 페르시아어를 말하며 이슬람을 믿었습니다. 16세기에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는 이슬람을 믿고, 페르시아 문화를 자랑으로 여기면서, 동시에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피를 이은 것도 자랑스러워한 군주였습니다.
동쪽: 티베트 불교
동쪽에서는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세웠습니다. 그가 받든 것은 티베트 불교였습니다.

원 세조 쿠빌라이의 초상. 원대 제후 초상첩에 실린 것으로, 네팔 장인 아니게 계통의 솜씨라고 전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퍼블릭 도메인
1260년 그는 사캬파의 고승 파스파를 국사로 봉하고, 뒤에 "제사(帝師)"로 고쳐 부르며 전국의 불교 업무를 맡겼습니다. 파스파는 명을 받아 "파스파 문자"도 만들었고, 이는 원나라의 공식 문자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파스파 문자로 쓴 원나라 성지의 사본. 티베트 승려가 몽골 황제를 위해 만든 글자로, 몽골어를 적었고 중국어도 적었다. 원이 망하자 이 글자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원이 망하고 몽골인이 초원으로 물러나자 티베트 불교의 영향은 한때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1578년 투메트부의 알탄 칸이 겔룩파의 소남 갸초를 만나 그에게 "달라이"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몽골어로 "바다"라는 뜻입니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는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몽골도 한 걸음씩 티베트 불교의 땅이 되었습니다.

몽골 카라코룸의 에르덴 조 사원. 1585년에 세워졌으며 몽골에서 가장 오래된 티베트 불교 대사원의 하나이다. 몽골 제국의 옛 도읍 폐허 위에, 옛 도읍의 돌로 지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Bernard Gagnon 촬영, CC0
이것은 쌍방향의 거래였습니다. 알탄 칸은 종교적 정당성을 얻어 자신을 쿠빌라이의 환생이라고 내세웠고, 겔룩파는 싸울 줄 아는 보호자를 얻었습니다.
중원: 개종이 아니라 동화
중원은 또 달랐습니다. 원나라의 몽골 지배자들은 유가로 개종하지 않았습니다. 유가는 애초에 "개종"이 필요한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원에 남은 많은 몽골인과 색목인은 명나라 이후 서서히 현지에 녹아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
같은 정복자가 세 곳에서 세 가지 결말을 맞았습니다. 왜일까요?
한 가지 설명은 14세기 북아프리카 학자 이븐 할둔에게서 나옵니다. 그는 『역사서설』에서, 척박한 변경에서 나온 집단은 결속력이 아주 강해 부유한 정주 문명을 정복할 수 있지만, 일단 그 안에 들어앉으면 정주 문명의 더 정교한 제도와 문화와 종교에 흡수되어 몇 세대 안에 결속력이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다른 설명은 더 현실적입니다. 지배자는 통치를 해야 합니다. 페르시아에서는 피지배자 대다수가 무슬림이었으므로, 지배자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통치의 정당성과, 일을 맡아 보는 사람들(종교 학자, 관료)의 협력을 함께 얻었습니다. 티베트와 몽골 본토에서는 티베트 불교가 이미 갖춰진 승단과 문자와 정당성의 논리를 주었습니다.
쉽게 말해 정복자의 개종은 어떤 교리에 "설득당한" 결과가 아닌 경우가 많고, 흔히 정치적 선택입니다. 피지배자의 종교로 피지배자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일신교가 더 강하다"와 관계가 있는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라, 이슬람이 서쪽 몽골인을 정복했으니 일신교가 더 강하다는 증거라고.
그러나 같은 시기 동쪽의 몽골인은 창조신을 중심에 두지 않는 종교인 티베트 불교를 믿었습니다. "더 강한 교리가 이긴다"면, 같은 정복자들이 곳에 따라 전혀 다른 신앙을 고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긴 것은 어느 한 교리가 아니라 각 지역에 이미 뿌리내려 있던 것입니다.
달라이라는 칭호는 그 뒤 어떻게 되었나
1578년의 그 칭호는 훗날 "누가 결정하는가"라는 문제와 얽혔고, 오늘까지 얽혀 있습니다.
1959년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탈출했고 그 뒤 티베트에 돌아간 적이 없습니다. 1995년 그는 여섯 살 사내아이를 제11대 판첸 라마로 인정했습니다. 며칠 뒤 그 아이와 가족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베이징은 "금병 추첨"으로 따로 판첸 라마를 뽑았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제11대 판첸 라마가 둘 있고, 그중 한 명은 30년 동안 아무도 본 적이 없습니다.
2007년 국가종교사무국은 「티베트 불교 활불 환생 관리 방법」을 공포해 활불의 환생은 정부에 보고하여 승인받도록 규정했습니다. "환생"으로 이어지는 종교인데, 환생 자체를 무신론 정부가 심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몽골의 칸이 칭호를 주고 종교의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오늘은 정부가 심사권으로 종교의 정당성을 자기 손에 쥐려 합니다.
내 생각은 계속 같습니다. 종교는 국가의 등록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국가가 정의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누가 활불이고 누가 판첸 라마인지는 믿는 사람들과 그 전승이 인정할 일이지, 사무실의 사람이 승인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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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동화된다"는 것도 철칙은 아닙니다. 오스만인과 아랍인은 모두 자기 종교를 정복한 땅에 가져가 결국 대다수 사람을 개종시켰습니다. 이븐 할둔의 "삼대에 쇠퇴한다"에도 예외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법칙이라기보다 흔한 경향입니다. 정복자가 적고 정복당한 땅의 종교와 문화가 충분히 성숙해 있을 때, "거꾸로 정복당하는" 쪽은 흔히 정복자입니다.
정복자가 결국 피정복자의 종교를 믿는다면, 대체 누가 누구를 정복한 것일까요?
참고 자료
- 가잔의 1295년 이슬람 개종(라시드 앗딘 『집사』)
- 이븐 할둔 『역사서설』, 1377
- 우즈베크 칸의 1313년 즉위; 파스파의 1260년 국사 책봉; 1578년 알탄 칸이 소남 갸초에게 "달라이" 칭호를 준 일: 통설의 사실
- 1959년 달라이 라마의 탈출, 1995년 판첸 라마 환생 분쟁, 2007년 「티베트 불교 활불 환생 관리 방법」(국가종교사무국령 제5호): 통설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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