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슈누에게 바쳐진 사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면적이 약 162헥타르로, 일반적으로 세계 최대의 종교 건축으로 여겨집니다.

앙코르와트 1층과 2층의 입면. 서쪽을 향하고 있다. 힌두교에서 서쪽은 비슈누의 방향이자 죽음의 방향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Jorge Láscar 촬영, CC BY 2.0
12세기 초에 크메르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주관해 세웠고, 그의 국가 사원이자 아마도 무덤이었을 것입니다. 모신 신은 힌두교의 주신 가운데 하나인 비슈누입니다. 사원의 부조에는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 인도 신화의 "젖의 바다 휘젓기"가 있습니다.

앙코르와트 회랑의 "젖의 바다 휘젓기" 부조. 신들과 아수라가 큰 뱀을 밧줄 삼아 잡아당기며 젖의 바다를 휘저어 불사의 감로를 구한다. 이 부조는 길이가 40여 미터로, 인도 신화가 캄보디아의 돌 위에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Markalexander100 촬영, CC BY-SA 3.0
인도의 신이 인도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계 최대의 사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불교 사원이 되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앙코르와트의 그 뒤 운명입니다. 12세기 말 크메르 왕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불교를 믿었습니다. 그 뒤 앙코르와트는 서서히 불교 사원이 되었고 힌두교 조각상 상당수가 불교 조각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중에는 상좌부 불교가 캄보디아의 주류가 되었고, 앙코르와트는 줄곧 중요한 불교 성지였습니다.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된 곳이며, 세워진 때부터 오늘까지 향불이 끊긴 적이 없는 유일한 사원이기도 합니다.
한 건물이 두 종교를 차례로 모신 셈입니다.
크메르 루주를 견뎌 냈다
더 혹독한 것도 견뎌 냈습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를 지배하며 종교의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사원은 창고, 돼지우리, 감옥으로 바뀌었고, 승려는 강제로 환속되었으며 많은 이가 살해되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거의 모든 남자가 평생 한 시기를 출가해 지내던 나라에서 승단은 뿌리가 끊길 뻔했습니다.
앙코르와트는 남았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이를 나라의 상징으로 삼아 그 윤곽을 자기들 국기에 그렸습니다. 1979년 이후 승려들이 하나둘 사원으로 돌아왔고 향불이 다시 피워졌습니다.
정복이 아니다
힌두교와 불교는 어떻게 동남아시아에 왔을까요?
프랑스 학자 조르주 세데스는 20세기 중엽에 "인도화된 국가"라는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기원 초부터 동남아시아의 대륙부와 섬에 인도의 종교, 산스크리트어, 왕권 관념, 법률, 예술을 왕실이 쓰는 나라들이 잇달아 나타났음에 주목했습니다. 푸난, 진랍, 참파, 스리위자야, 마타람……
그러나 이것은 인도가 쳐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인도는 역사상 동남아시아에 대규모 식민 정복을 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전해진 것은 주로 두 길을 통해서였습니다.
- 무역로: 인도양의 계절풍 항로가 인도 상인, 브라만, 승려를 동남아시아의 항구들 사이로 오가게 했다.
- 왕실이 스스로 받아들였다: 동남아시아의 통치자들은 인도의 종교와 왕권 관념(예컨대 "신왕")이 자기를 떠받치는 데 큰 도움이 됨을 알고 스스로 브라만과 승려를 불러들였다.
세데스의 구체적인 주장은 그 뒤 상당히 수정되어, 학자들은 동남아시아 현지인들의 주체성을 더 강조합니다. 인도가 "수출"한 것이 아니라 동남아시아가 "골랐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군대 없는 전파였습니다.
다신교의 "확장"
인터넷에는 이런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신교는 일신교를 당하지 못한다." 이유는, 일신교는 배타적이고 선교 충동이 있지만 다신교는 포용적이어서 확장할 생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앙코르와트는 이 말에 대한 아주 단단한 반례입니다.
천 년이 넘는 동안 힌두교와 불교는 동남아시아 전역에 퍼졌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는 보로부두르(불교)와 프람바난(힌두교)이 있으며 둘 다 9세기에 세워졌습니다. 발리섬은 오늘날도 힌두교가 중심이고,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는 오늘날 모두 상좌부 불교 국가입니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의 보로부두르. 9세기에 세워진 불교의 대탑이다. 오늘날 그 주변에 사는 사람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Zaenulihsan91 촬영, CC BY-SA 4.0

프람바난. 보로부두르에서 멀지 않은 힌두교 사원군으로 역시 9세기에 세워졌다. 같은 평원에 불탑 하나와 힌두교 사원 한 무리가 수십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거의 같은 때에 지어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Ephoto, Uwe Aranas 촬영, CC BY-SA 3.0
불교는 더 멀리 전해졌습니다. 인도에서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 일본, 티베트, 동남아시아로. 창조신을 중심에 두지 않는 종교가 인류 역사상 가장 널리 전해진 종교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럼 동남아시아의 이슬람은
동남아시아의 이슬람도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 줍니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슬람이 동남아시아의 섬들에 퍼진 것도 주로 싸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앞의 힌두교와 불교처럼 무역로에 의해서였습니다. 아라비아, 페르시아, 인도의 무슬림 상인, 스스로 개종한 항구 도시의 통치자, 수피 선교사들입니다.
그러므로 동남아시아에서는 다신교든 불교든 일신교든 전파 방식이 비슷합니다. 상선을 타고 와서 그곳 왕에게 선택받는 것입니다.
뒤집어 보기
물론 일신교가 더 조직적이고 선교 의욕이 강한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와 아랍 제국의 이슬람화도 분명 정치·군사력을 동반했습니다.
하지만 종교 전파를 "교리의 강약"으로 돌리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길입니다. 한 종교가 얼마나 멀리 가는가는 어느 무역로에 올라탔고 어느 왕실을 설득했는가에 달린 경우가 많고, 신이 몇 분인가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당신 자신의 신앙이나 가치관은 누군가 설득해서 갖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마침 그 길 위에 태어난 것입니까?
참고 자료
- George Coedès, The Indianized States of Southeast Asia(영역 1968)
- 앙코르와트의 건설(수리야바르만 2세, 12세기 초, 비슈누에게 헌정)과 불교 사원으로의 전환: 통설의 사실
- 보로부두르, 프람바난(9세기); 발리섬의 힌두교;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무역로를 통한 전파: 통설의 사실
- 크메르 루주 시기(1975–1979)의 종교 폐지: 통설의 사실
- 이미지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