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한 묶음

2025년 퓨리서치센터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종교 인구의 변화를 집계한 보고서를 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늘었습니다. 무슬림은 3억 4,700만 명, 기독교인은 1억 2,200만 명, 힌두교도는 1억 2,600만 명, 무종교인은 2억 7,000만 명이 늘었습니다.

예외는 하나뿐입니다. 불교도는 3억 4,300만 명에서 3억 2,400만 명으로 줄어 약 1,900만 명이 감소했고,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9%에서 4.1%로 내려갔습니다.

2010–2020년 종교 인구 증감

10년 동안 사람 수가 줄어든 것은 불교도뿐이었다. 데이터: 퓨리서치센터, 2025

이 10년 동안 절대 수가 줄어든 유일한 큰 종교입니다.

이유 하나: 늙고, 적게 낳는다

퓨의 분석에 따르면 불교도는 전 세계 모든 종교 집단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고 아이를 가장 적게 낳습니다. 2020년 불교도의 중위 연령은 40세로 세계 중위 연령보다 9세 많고,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불교도의 평균 출산율은 약 1.6에 그쳐 대체 수준 아래인 유일한 종교 집단이었습니다.

이는 불교도가 어디에 사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불교도의 98%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살고, 그곳의 많은 나라와 지역, 곧 중국, 일본, 한국, 대만, 태국이 마침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는 곳입니다.

이유 둘: 떠났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일 뿐입니다. 나머지 절반이 더 아픕니다. 어려서 불교를 믿던 많은 사람이 자라서 떠납니다.

퓨의 자료로는, 불교 가정에서 자란 성인 100명 가운데 22명이 이미 불교도가 아닙니다. 동시에 다른 종교나 무종교에서 불교도가 된 사람은 12명뿐입니다. 들어오고 나가고를 따지면 순유출이 10명입니다.

들어오고 나가고, 순유출 10명

불교 가정에서 자란 성인 100명당 22명이 나가고 12명이 들어왔다. 데이터: 퓨리서치센터, 2026

동아시아에서는 이탈이 특히 심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어려서 불교를 믿던 사람의 절반가량이, 한국에서는 약 6할이 이미 떠났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라 "무종교"가 되었습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 대륙, 일본, 한국, 대만, 홍콩의 불교도는 합쳐서 약 3,200만 명이 줄어 약 22% 감소했습니다.

왜 사람을 붙잡지 못하나

수치는 "무엇"만 말할 수 있고, "왜"는 해석에 기대야 합니다. 평소 모아 둔 것들 가운데 꽤 흥미로운 견해를 본 적이 있어서, 하나의 해석으로 참고해 봅니다.

그 네티즌은 동아시아의 불교가 "소원 연못" 같다고 했습니다. 일이 있을 때 가서 향을 하나 피우고 점괘를 뽑고, 일이 없으면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옆에서 향을 피우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고, 절의 스님도 모르고, 다음에 언제 올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의 교회와 이슬람의 모스크는 "공동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주 모이고, 신자들이 서로 알고 서로 돕고, 혼례와 장례에는 챙겨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다지 독실하지 않은 사람도 이런 관계 때문에 남습니다.

그는 더 날카로운 견해도 말했습니다. 불교의 가장 매력적인 "상품"인 명상, 채식, 소박한 삶은 이미 세속 사회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명상은 마인드풀니스 앱과 정신 건강 강좌가 되었고, 채식은 건강과 환경을 위한 선택이 되었으며, 소욕지족은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불교도가 되지 않고도 이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네티즌의 해석이지 연구 결론은 아닙니다. 다만 사회학의 몇몇 논의와 맞아떨어집니다. 한 종교가 사람을 붙잡을 수 있느냐는 상당 부분 그 종교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관계망에 박혀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뒤집어 보기

"불교는 쇠퇴하고 있다"는 결론에도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첫째, 집계 기준. 동아시아에서는 많은 사람이 설문지에 자기가 "불교도"라고 적지 않지만, 절에 가고, 집에 불상을 모시고, 스님을 청해 천도재를 지냅니다. 사회학자 양칭쿤은 이를 "분산적 종교"라고 불렀습니다. 독립된 조직 안에 있지 않고 가정과 명절 속에 흩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설문지가 잰 "이탈" 가운데 일부는 단지 "불교도"라는 꼬리표를 더는 쓰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 차이가 매우 큽니다. 태국에서는 어려서 불교를 믿던 거의 모든 사람이 지금도 자신을 불교도라고 여깁니다. 불교가 동아시아에서 줄어든다고 동남아시아에서도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루앙프라방의 아침 탁발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이른 아침, 한 여인이 어린 사미승에게 찹쌀밥을 공양하고 있다. 상좌부 불교 나라에서는 불교가 아직도 매일의 아침 식사 속에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shankar s. 촬영, CC BY 2.0

셋째, 영향력과 인원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관념과 수행법은 서양 지식계와 중산층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대중 종교로서는 사람이 줄고 있어도, 사상 자원으로서는 퍼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

이 글의 자료를 읽으며 내가 떠올리는 것은 불교가 아니라 유가입니다.

동아시아 불교의 모습이 "소원 연못"입니다. 바랄 것이 있을 때만 오고, 빌고 나면 떠나며, 절과 사람 사이에 관계망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유가는 더 나쁜 처지여서 소원 연못조차 아닙니다. 사당은 헐렸고, 족보는 끊어졌고, 남은 것은 청명 하루, 저마다 고향에 돌아가 지전 한 묶음을 태우는 일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유가가 살아남으려면 "문화"에만 기댈 수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매주, 매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나를 아는 사람이 있고, 일이 생기면 챙겨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와 모스크는 이것을 해냈고, 동남아시아의 회관과 종친회도 한때 해냈습니다. 불교의 이 교훈은 우리 대신 먼저 치러 준 것입니다.


어떤 종교에서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 그 종교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다면, 그래도 그 종교는 종교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요?


참고 자료

  • Pew Research Center, "How the Global Religious Landscape Changed From 2010 to 2020", 2025
  • Pew Research Center, "Why is Buddhism shrinking worldwide?", 2026-03-11
  • C. K. Yang(양칭쿤), Religion in Chinese Society, 1961
  • 네티즌의 답변(2026-02, 네티즌의 견해로 인용, 연구 결론 아님)
  • 이미지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