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창의 논쟁 하나
해마다 청명 무렵이면 인터넷에 이런 물음이 떠오릅니다. 청명에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종교일까?
나는 어느 댓글창의 논쟁을 저장해 두었는데, 몇 가지 입장이 꽤 대표적입니다.
-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먼저 가신 분을 기리는 게 종교와 무슨 상관이야? 가족을 그리워하는 건 아주 당연한 감정이잖아."
- 어떤 사람은 되받았습니다. "그럼 왜 종이를 태우고,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해? 오컴의 면도날로 보면 가족을 그리워하는 데 이런 의식은 필요 없어. 그런데도 수천 년 동안 중국인은 계속 제사를 지내 왔어."
- 종교학의 정의를 꺼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종교에는 네 요소가 있다. 신앙의 대상, 교리, 의례, 중앙집권적 조직. 조상 제사는 교리가 없고 조직도 흩어져 있으니 종교가 아니다."
-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네 가지 다 있어. 조상, 가훈, 제사, 사당. 다만 지금은 사람들이 원자화돼서 사당이 없어졌을 뿐이야."
이 논쟁이 흥미로운 것은 진짜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정의하는 데 쓰는 그 잣대는 애초에 어디서 왔을까요?
서양의 잣대
오늘날 중국어의 "종교(宗教)"라는 말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번역어로 들어와 영어 religion에 대응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religion이라는 개념은 기독교를 본보기로 삼아 자랐습니다. 분명한 신앙의 대상(신), 성문화된 교리, 독립된 조직(교회), 분명한 구성원 자격(세례)이 있습니다.
이 잣대로 재면 불교와 도교는 간신히 들어갑니다. 그러나 조상 제사, 토지신 참배, 풍수, 설날의 분향 같은 것은 재기 어렵습니다. 교회도 없고, 입교 의식도 없고, "나는 무슨 교 신자입니다"라는 신분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동아시아는 각종 국제 조사에서 "무종교" 비율이 가장 높은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히곤 합니다. 한국의 2015년 인구총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종교가 없다고 답했고, 중국과 일본은 "무종교" 비율이 더 높습니다.
물음을 바꾸다
그런데 "어떤 종교를 믿습니까"가 아니라 "이런 일을 합니까"로 물으면 답이 아주 달라집니다.
- 설이나 명절에 조상에게 향을 올립니까?
- 청명에 성묘를 합니까?
-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점괘를 뽑아 본 적이 있습니까?
- 결혼이나 이사 때 날짜를 봅니까?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물음에 "예"라고 답하는 사람이, 설문지에 "종교 있음"이라고 표시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경우가 흔합니다.

성묘일, 무덤 언덕에 지전이 날린다. 출처: Wikimedia Commons, chia ying Yang 촬영, CC BY 2.0
2008년부터 청명은 중국의 법정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청명이면 수억 명이 길 위에서 서두릅니다. 조상의 무덤 앞에 잠깐 서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 일이 "신앙"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분산적 종교
사회학자 양칭쿤은 1961년 『중국 사회 속의 종교』에서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이 큰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종교의 형태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 제도적 종교: 독립된 신학, 조직, 성직자가 있는 것. 불교, 도교 같은 것.
- 분산적 종교: 독립된 조직이 없고, 신앙과 의례가 가정, 종족, 지역 사회, 국가의 일상 속에 흩어져 있는 것. 조상 제사는 가장이 주관하고, 사(社)의 신은 마을이 유지하고, 하늘은 황제가 제사 지낸다.
양칭쿤은 중국인의 종교 생활이 주로 분산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틀로 보면 청명 성묘는 물론 종교 행위입니다. 다만 그 "교회"는 가족이고, "성직자"는 집안 어른이고, "경전"은 대대로 전해 온 규범입니다.
청명도 관리를 받은 적이 있다
이 분산적 종교는 20세기에 호된 일도 겪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정부는 장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도시에서 먼저 화장을 밀고, 나중에 농촌으로 넓히면서 매장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1960~70년대의 "사구 타파"에서는 조상 제사와 지전 태우기가 "봉건 미신"으로 취급되어 사당은 헐리고, 위패는 부서지고, 족보는 불태워졌으며, 많은 곳에서 무덤마저 밀어 버렸습니다.
2012년 허난성 저우커우는 "장례 개혁"을 이유로 1년이 안 되는 사이에 2백만 기가 넘는 무덤을 밀어냈습니다(공식 수치는 246만 기). 조상 무덤을 막 밀어낸 집 가운데 이듬해 이른 봄에 슬며시 흙을 다시 쌓아 올린 집도 있었습니다.
교회 없는 종교에는 대신 말해 줄 사람이 없고 숨을 곳도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살아남은 것은 전적으로 집집마다 해마다 스스로 짊어졌기 때문입니다.
남양의 청명
흥미롭게도 이 한 벌은 해외에서 더 온전히 지켜지기도 합니다.

싱가포르 부킷 브라운 묘지. 청명 무렵 봉분 위에 눌러 놓은 오색지. 이 화교 묘지에는 십수만 명이 묻혀 있고, 가장 오래된 묘비는 청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출처: Wikimedia Commons, Jacklee 촬영, CC BY-SA 3.0

태국 화교 가정이 청명에 조상께 차린 제물. 통닭, 돼지고기, 과일, 떡. 여러 세대가 이미 중국어를 못 하지만, 제물 차리는 법은 기억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Ubs6u!d-pongsakorn 촬영, CC BY-SA 4.0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화교가 몇 세대째 중국어를 하지 않지만 청명이면 여전히 온 가족이 산에 오르고 제물은 옛 모습 그대로 차립니다. 여권은 중국 것이 아니고 설문지에 "종교 있음"을 표시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일은 그들이 계속해 왔습니다.
동아시아의 종교성은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는 정말 "종교를 가장 안 믿는" 곳일까요?
아마 더 정확한 표현은 이럴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종교성은 "소속" 안에 있지 않고 "하는" 안에 있다. 사람들은 "나는 무슨 교 신자입니다"라고는 별로 말하지 않지만, 종교적인 의미를 띤 일을 많이 합니다.
이는 "동아시아 사람에게는 신앙이 없으니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이 왜 자주 어색하게 들리는지도 설명해 줍니다. 기독교를 본으로 만든 잣대로 "공백"을 재 놓고는, 그것을 메우려고 서둘러 제도적 종교를 찾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보기
그러나 "분산적 종교"도 변하고 있습니다.
도시화로 종족은 흩어지고 사당은 사라졌고, 많은 젊은이가 1년에 청명 때만 고향에 한 번 갑니다. 조상 제사는 점점 "문화 풍습"처럼 되어 가고, 신앙의 내용이 있는 의식처럼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묘하는 사람이 조상이 저세상에서 자기를 지켜본다고 믿지 않는다면, 그래도 종교일까요?
다른 한편으로, 분산적 종교는 조직이 없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특히 취약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을 모아 주는 교회도 없고 매주의 모임도 없으니, 가족이 흩어지면 신앙도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부 제도적 종교가 동아시아 도시에서 자란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왜 하필 청명을 바라보는가
내가 유가를 종교화하겠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내가 새 교를 만들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사실 줄곧 거기 있었습니다. 조상 제사, 청명, 설, 읽을 수 있는 한자. 그것이 동아시아 사람의 공동의 신앙인데, 아무도 그것을 종교로 보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지켜 주지 않았을 뿐입니다.
기독교에는 교회가 있고 이슬람에는 모스크가 있어서, 어디로 흩어져도 다시 모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 한 벌은 사당과 종족에 기댔습니다. 도시가 오고 사당이 헐리자 청명 그 하루만 남았습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종족에 기대지 않고도 사람이 모일 수 있는 형태를 그것에 주는 것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자란 아이도, 서울에서 자란 아이도, 광저우에서 자란 아이도, 청명 그날 자기가 하는 일이 같은 일임을 알도록 말입니다.
성묘할 때, 당신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참고 자료
- C. K. Yang(양칭쿤), Religion in Chinese Society, UC Press, 1961
- 통계청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종교 항목
- 저우커우 평분: 『인민일보』 2012-12-04 보도 "11월 말까지 허난 저우커우시 장례 개혁이 10개월째 추진… 무덤 246만 기를 평평하게 하거나 이장"(매일경제신문 전재) 🟢; 2013년 섣달그믐 타이캉현의 한 마을이 두 시간 만에 160여 기의 무덤을 다시 쌓음: 『화상보』 보도(유가망 전재, 2013-02-22) 🟡; 국무원이 「장례 관리 조례」를 고친 뒤 각 마을이 무덤을 다시 쌓아, 2016년에는 "밀렸던 무덤 대부분이 다시 쌓였다": 『신경보』 2016-04-05 「저우커우 평분 후유증」(유가망 전재) 🟡
- 청명이 2008년부터 중국 법정 공휴일이 된 것; 1950년대 이래의 장례 개혁, "사구 타파": 통설의 사실과 언론 보도
- 인터넷의 관련 논의(2026-04, 네티즌의 견해로 인용)
- 이미지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표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