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가 쓰는 것

《이웃들의 하늘》은 이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반도, 일본, 베트남, 류큐, 타이완,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동아시아인 사회. 그들은 우리와 거의 같은 책을 읽었고, 거의 같은 방식으로 조상을 모셨습니다. 밖에서 오는 압력과 국가의 힘 아래에서, 저마다 유교, 불교, 도교, 신도, 기독교를 반죽해 서로 다른 것을 빚어냈습니다. 살아남은 것도 있고, 쓰러진 것도 있습니다. 국가에 붙들려 쓰이다가, 바로 그 국가에 의해 해체된 것도 있습니다.

하나씩 보고 싶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국가가 어떻게 합쳐지고, 어떻게 갈라지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저는 동시에 다른 두 시리즈를 쓰고 있습니다. 《의귀》는 1644년 이후의 중국 자신을 다루고, 《탈사》는 세계의 여러 문명과 종교를 나란히 놓고 봅니다. 이 시리즈는 이웃만 보되, 중국 쪽의 대조를 곁들입니다. 함께 읽어야 할 곳은 글 끝에 안내를 달고, 상대편의 사실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은, 제가 구경하러 이웃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하나의 기울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입장이 없는 대화 상대

저는 자료를 찾을 때 AI를 자주 씁니다. 오래 쓰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AI가 가장 빈틈없고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입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견해든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짊어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온 곳, 자신의 걱정, 지키고 싶은 것을 안고 역사를 읽습니다. 제가 가장 단단한 증거로 남의 생각을 허물면서, 정작 저 자신에게는 직관이 없는 척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부정직입니다.

그래서 첫 편에서 저의 기울기를 꺼내 놓겠습니다.

나의 기울기

저의 기울기는 이렇습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미래는 어쩌면 유교의 종교화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이것을 잠정적으로 "톈다오(天道)"라고 부릅니다.

그 상징으로는 전서(篆書)로 쓴 "天" 자를 쓰고 싶습니다. 후한의 허신(許慎)은 《설문해자》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天,顛也。至高無上,從一大。"(하늘은 정수리다. 더없이 높아 그 위가 없다. 一과 大로 이루어진다.) 전서의 "天"은 팔다리를 벌리고 선 사람의 머리 위에 가로획 하나를 그은 모양입니다. 사람의 머리 위, 그곳이 하늘입니다.

이 글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의 모습이 아니라 한 사람과 그 머리 위에 있는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서의 "天" 자

전서의 "天": 팔다리를 벌리고 선 사람의 머리 위에 가로획 하나.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제가 바라는 천도는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기를 쉬지 않는다)이며, "항상됨(常)"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경외심을 주면서 스스로를 다스리게 하는 질서이지, 맹목적인 열광을 요구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왜 이런 기울기를 갖게 되었나

이 기울기는 아무 데서나 생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글을 읽으면서 같은 종류의 일을 거듭 마주쳤습니다.

첫째, 종교는 경계와 공동체로 이어진다. 자이나교도는 인도 인구의 천분의 사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천오백 년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유대인은 성전을 잃은 뒤 나라 전체를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사람이 적다고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위험합니다.

둘째, 동아시아의 종교성에는 조직이 없다. 사회학자 양칭쿤(楊慶堃)은 중국인의 종교를 "확산적"이라고 했습니다. 가족, 종족, 명절, 국가 의례 속에 흩어져 있고 독립된 교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있지만, 도시화로 가족이 흩어지면 함께 흩어집니다. 청명(성묘하는 날)은 남았지만 사당은 사라졌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불교는 "소원 비는 연못" 같아서, 일이 있으면 향을 피우러 가고 일이 없으면 떠올리지도 않습니다.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동아시아의 불교도는 약 3,200만 명 줄었습니다.

셋째, 제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바로 "목소리"입니다. W3Techs의 2026년 6월 통계에 따르면, 내용 언어를 식별할 수 있는 전 세계 웹사이트 가운데 영어가 약 49.7%, 일본어가 약 5.0%, 중국어는 겨우 약 1.2%입니다. 이 통계는 공개 웹사이트만 셀 뿐 위챗 같은 닫힌 플랫폼은 넣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문제의 일부입니다. 진지하게 쓴 중국어 장문의 상당수는 세계의 검색 엔진에서 아예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약 7분의 1인데, 열린 인터넷에서는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간체자 세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조직도 없고 목소리도 없는 문화는 무엇으로 목숨을 이어 갈까요? 제 직관으로는, 사람을 모으고, 국경을 넘고, 소속감과 자기 절제를 함께 주는 무엇이 필요합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그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유교입니다. 그러나 유교는 끝내 자신의 "교회"를 키워 내지 못했습니다.

규칙대로, 허물어 보기

이 시리즈에서 제가 정한 규칙은, 마음에 드는 직관일수록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증거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저의 기울기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금 제 손에 있는 가장 단단한 반례 다섯 가지를 들겠습니다. 이어지는 글들에서 하나씩 펼쳐 보겠습니다.

반례 하나: 공교회는 실패했다. 1912년, 천환장(陳煥章), 캉유웨이(康有為) 등이 상하이에서 공교회(孔教會)를 세웠습니다. 1913년과 1916년 두 차례, 공교를 중화민국의 국교로 정해 달라고 청원했지만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뒤이은 신문화운동은 "공자의 가게를 타도하라"를 한 세대의 구호로 만들었습니다. 유교를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는 백여 년 전에도 있었고, 그것도 당대 가장 학식 있는 사람들이 했습니다.

나중에 조금 더 꼼꼼히 읽다가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교회가 실제로 만들어 낸 것은 공자를 모시는 의례, 연례 대회, 정기 간행물뿐이었습니다. 매주의 모임, 회원 명부, 대대로 이어지는 일상은 찾지 못했습니다. 캉유웨이가 그린 "교회"를 공교회 스스로도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공교회의 실패가 보여 주는 것은 "국가와 헌법에 기대고, 제정과 묶여 있으며, 일상의 신자가 없는" 한 가지 판본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뿐이고, "유교의 종교화는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의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이 부분은 이차 연구에 근거한 것으로, 일차 기록은 읽지 못했습니다.)

반례 둘: 국가신도. 메이지 이후 일본은 신도를 국가의 신앙으로 개조했습니다. 신사는 국가가 관리했고 천황 숭배가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한 민족을 결속시켰지만, 군국주의와도 얽혔습니다. 1945년 12월, 점령 당국은 "신도 지령"을 내려 신도와 국가의 연결을 끊었습니다. 하나의 전통이 국교로 개조될 때, 그 힘과 위험은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도쿄 메이지 신궁의 도리이

도쿄 메이지 신궁의 도리이. 메이지 신궁은 메이지 천황을 모시는 신사로 1920년에 세워졌다. 출처: Wikimedia Commons, Kakidai, CC BY-SA 4.0

반례 셋: 인도네시아의 공교. 인도네시아에서 유교는 정말로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원이 있고, 성직자가 있고, 경전과 의식이 있으며, 신분증에 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것은 아주 작은 소수이고, 그 종교화는 "누구나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제도에 떠밀려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탈사》에서 썼습니다.)

반례 넷: 이란. 종교 학자가 이끄는 나라에서, 종교 권위는 처음에는 아이를 적게 낳으라고, 나중에는 많이 낳으라고 호소했습니다. 출산율은 앞의 절반만 따랐습니다. 제가 종교가 동아시아를 저출산에서 건져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 이란은 차가운 경고입니다. (이것도 《탈사》에 있습니다.)

반례 다섯: 같은 이름의 종교. 이름을 붙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한국에는 1905년부터 같은 한자를 쓰는 "천도교(天道教)"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 흥망은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전신은 19세기의 동학이며, 3대 교주 손병희가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근대적인 교단 조직을 세웠습니다. 1919년 3·1 독립운동에서 천도교는 중심 세력의 하나였습니다. 한때 큰 힘을 가졌지만, 오늘날 신도는 아주 적습니다. "천도"를 이름으로 내건 동아시아 토착 종교가 실제로 나타났고, 실제로 흥망을 겪었습니다. 다음 편은 이 종교를 다루면서, 제가 말하는 톈다오와 분명히 구분하겠습니다.

최제우 초상

최제우(1824–1864), 동학의 창시자. 출처: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제가 말하는 "동아시아 사람들"은 누구인가

제가 "동아시아 사람들"이라고 할 때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전체를 가리킵니다. 중국, 일본, 한반도, 베트남,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그 후손들. 같은 사서(四書)를 읽고, 거의 같은 조상을 모시고, 해마다 거의 같은 날에 거의 같은 무덤에 흙 한 줌을 더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그저 하나의 이름일 뿐이고, 저는 이것으로 무엇을 설명하지 않으며, "동아시아 사람이라서 이렇다"고 쓰지도 않겠습니다.

제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은 그중에서 지식이 있고, 깊이 생각하고, 이해할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전체로 보면 이 사람들은 약하고, 목소리가 작습니다. 중국 대륙과 간체자 세계는 특히 그렇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생각한 뒤, 검색 엔진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에 써 두고, 그날의 인기 검색어와 함께 가라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몇 가지 규칙

  • 모든 사실에는 출처를 밝힙니다. 출처를 밝힐 수 없는 것은 올리지 않습니다.
  • 모든 글에 "거꾸로 보기"라는 절을 두어, 저를 가장 강하게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을 다룹니다. 반대 의견을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 제 입장은 분명히 쓰고, 어디까지가 제 견해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분해 표시합니다.
  • 제가 다루는 것은 사상과 역사와 대가이지, 종교를 만드는 방법이 아닙니다.
  • 살아 있는 정치인과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사실은 사실대로, 평가는 평가대로 나누어 쓰고, 평가는 제가 책임집니다.
  • 저는 중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바깥에서 이웃을 보고 있으니, 보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살고 계신다면, 어디가 틀렸고 어디가 치우쳤는지 꼭 알려 주십시오.

앞으로

앞으로도 이 기울기를 다른 사람들의 사례에 부딪혀 보겠습니다. 한국, 일본, 베트남에는 저마다의 천도가 있었고, 저마다의 결말이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시작합니다. "천도교"라는 종교가 백여 년 전 조선에 나타났습니다. 그다음은 일본의 국가신도, 베트남의 까오다이교, 그리고 중국 쪽에서는 공교회가 왜 실패했는지, "天"이라는 글자가 도대체 무엇인지. 한국에 대해서는 몇 편 더 쓰려 합니다. 근대화 이후에도 의례가 가장 살아 있는 이웃이고, 가장 물어볼 만한 이웃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웃에게 드리는 말. 여기까지 읽으신 당신이 서울, 도쿄, 하노이, 타이베이, 나하에, 혹은 싱가포르, 자카르타, 샌프란시스코, 아니면 세계 어느 곳에 있다면, 작은 이야기 하나부터 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집에도 위패나 오래된 사진이 하나 있고, 해마다 꼭 하루는 돌아가 그 앞에 서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종교"라고 불러 본 적은 한 번도 없지요? 평생 경전 한 구절 외워 본 적 없어도, 그날만은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 시리즈가 쓰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교회도, 공통의 이름도 없습니다. 그러나 거의 같은 날들, 거의 같은 한자, 입 밖에 내기 조금 쑥스러운 거의 같은 공경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하나씩 흩어지고 있고, 저는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한 집 한 집 여러분의 문 앞까지 걸어가, 어떻게 지켰고, 어떻게 잃었고, 어떻게 다시 주워 들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무엇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들으러 왔고, 묻고 싶어서 왔습니다. 우리,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객관은 방법이지 인격이 아니다. 가장 단단한 증거로 내 직관을 허물 수는 있지만, 직관이 없는 척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문명을 위해 "목숨을 잇는 법"을 설계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참고 자료

  • 허신, 《설문해자》 "天" 항목
  • W3Techs, "Usage statistics of content languages for websites", 2026년 6월(공개 웹사이트만 집계)
  • 천도교: 1905년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1919년 3·1운동
  • Helen Hardacre, Shinto and the State, 1868–1988, Princeton UP, 1989; 1945년 12월 "신도 지령"
  • 인도네시아의 공교: 1965 / 1967 / 2000
  • 공교회의 조직과 활동: 《의귀》의 「공자를 제사하지 않으면 법에 어긋나고, 제사하면 교를 배반한다」 및 그 바탕이 된 작가의 조사 노트(2차 연구에 근거, 1차 사료 미열람)
  • 메이지 신궁 1920년(다이쇼 9년) 11월 1일 창건: 메이지 신궁 공식 사이트 https://www.meijijingu.or.jp/about/ 🟢
  • 그림 출처는 각 설명에 표기
  • Abbasi-Shavazi 외, The Fertility Transition in Iran, 2009
  • 양칭쿤, Religion in Chinese Society, 1961
  • Pew Research Center, 2025·2026년 보고서(동아시아 불교도 수의 변화)
  • 1912년 공교회 설립, 1913년과 1916년 국교 청원: 통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