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읽힌 한마디

순자(荀子, 전국 시대의 유가로 맹자보다 반세기쯤 뒤의 사람)는 〈천론(天論)〉에 아주 유명한 대목을 남겼습니다.

기우제를 지낸 뒤에 비가 내렸다면 왜일까요? 아무 까닭도 없습니다.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는 내립니다. 일식이 있으면 "구하는" 의식을 하고, 가뭄이 들면 비를 빌고, 큰일은 점을 칩니다. 순자는 말합니다. 이런 것은 진짜로 무언가를 얻어 낼 수 있다고 믿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문(文)으로 여기는 것", 곧 예(禮)의 꾸밈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순자상

순자(荀況)상. 출처: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그다음이 자주 인용되는 그 구절입니다. 군자는 그것을 문으로 여기고, 백성은 그것을 신으로 여긴다. 문으로 여기면 길하고, 신으로 여기면 흉하다(君子以爲文, 而百姓以爲神。以爲文則吉, 以爲神則凶).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읽고 "이중 구조"를 읽어 냅니다. 똑똑한 사람은 이것이 의례인 줄 알고, 보통 사람은 진짜라고 믿는다고.

하지만 이 구절의 끝은 이렇습니다. 의례로 여기면 길하고, 정말 신령이 있다고 여기면 흉하다.

다시 말해 순자는 그 구조를 말했지만 그 구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도 이것입니다. 이 오래된 생각은 그것이 나중에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주역》의 또 다른 구절

자주 거론되는 또 하나의 말은 《주역·관괘(觀卦)》의 단전(彖傳)에서 나옵니다. 하늘의 신도(神道)를 보면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고, 성인이 신도로써 가르침을 베푸니 천하가 따른다(觀天之神道, 而四時不忒; 聖人以神道設敎, 而天下服矣).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흔히 "성인이 귀신을 빌려 백성을 교화한다"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왕필(王弼)의 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도는 형체가 없다. 하늘이 사계절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지만 사계절은 한 번도 틀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무엇을 하는지도 보이지 않는데, 백성은 저절로 따른다.

이렇게 읽으면 "신도"는 소리 없는 질서에 가깝습니다. 사계절처럼 돌아가는 것. "설교(設敎)"는 그것을 본받는 것이지, 귀신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구절의 처음 뜻은 후세의 "백성을 어리석게 한다"는 읽기보다 훨씬 넓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곳의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 생각은 중국에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 출신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로마에 포로로 잡혀 십수 년을 로마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역사》 제6권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로마 공화정이 가장 남다른 점은 신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 군중은 변덕스럽고, 법을 어기려는 욕망과 이성 없는 분노로 가득하며, "신비로운 두려움"으로만 그들을 묶어 둘 수 있다. 옛사람들이 신과 지옥이라는 관념을 들여온 것은 까닭 없는 일이 아니었다고.

로마의 대제관 스카이볼라는 신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고 전해집니다. 시인의 신, 철학자의 신, 정치가의 신. 첫째는 너무 황당하고, 둘째는 나라에 맞지 않으며, 어떤 말은 백성이 알아서는 안 된다. 그는 "도시가 종교에 관해 속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에서 전한 것입니다. 눈여겨보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생각의 비판자이고, 바로(Varro)의 말을 옮겨 적었을 뿐입니다.

더 내려오면 도스토옙스키가 있습니다.

도스토옙스키상

도스토옙스키(1821–1881), Vasily Perov, 1872년 작.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그리스도가 인간 세상에 돌아왔다가 대심문관에게 체포됩니다. 대심문관은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일을 이미 바로잡아, 기적과 신비와 권위 위에 세워 놓았다"고. 사람들은 기뻐 날뛰었습니다. 다시 양 떼처럼 이끌려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저는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대심문관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조금 절망적일 만큼 사랑합니다. 그들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쓸모가 있을까

이것들을 한자리에 놓으면 하나의 틀이 떠오릅니다.

  • 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대중에게 쓸모가 있다고 여긴다.
  • 그들 자신의 종교에 대한 태도는 더 복잡하다.
  • 그래서 "우리는 안다"의 층과 "그들은 믿는다"의 층이 생겨난다.

이 생각이 매혹적인 것은, 진짜 문제 하나를 푸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에는 모두가 함께 지키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고 싶어 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로마의 시민 제사는 의례와 관직에 기대어 몇 세기를 이어졌고, 4세기 말 기독교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갔습니다. 중국의 "신도설교"는 이천 년 동안 여러 모습으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단명한 예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 로베스피에르는 "최고 존재" 숭배를 설계했습니다. 1794년 5월 7일 국민공회가 법령을 내렸고, 6월 8일에 성대한 축제가 열렸습니다. 두 달이 채 못 된 7월 27일 그가 쓰러지자 이 숭배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 사상의 원천 중 하나는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구상한 "시민 종교"였습니다.

1794년의 "최고 존재" 축제

1794년 6월 8일 파리의 "최고 존재" 축제. 출처: Wikimedia Commons, Thomas-Charles Naudet, 퍼블릭 도메인

로베스피에르상

로베스피에르(1758–1794)상. 출처: Wikimedia Commons, Louis-Léopold Boilly, 퍼블릭 도메인

위에서 아래로 설계된 종교와 사람들 속에서 자라난 종교는 운명이 다른 듯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관찰일 뿐이고, 표본이 너무 적어서 법칙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뒤집어 보면

증거의 문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리트는 사실 믿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볼 수 있는 증거는 대부분 2차 자료이고, 게다가 적수 쪽에서 나온 것이 많습니다. 스카이볼라의 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의 말을 옮긴 것이고, 폴리비오스는 바깥에서 온 관찰자이며, 이반의 이야기는 소설 속의 한 인물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도스토옙스키의 견해와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순자도 말해야 합니다. 그는 그 구조를 묘사했지만 "신으로 여기면 흉하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를 "우민(愚民)"의 계보에 넣는 것부터가 조금 불공평합니다.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습니다. 이른바 "엘리트는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로 믿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믿는 방식이 다른 것일까요? 공자는 "제사 지낼 때는 계신 듯이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계신 듯이 한다(祭如在, 祭神如神在)"고 했습니다. 제사 지낼 때, 신이 정말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하는 것. 이것은 믿지 않는 것일까요, 다른 방식의 믿음일까요?

이 구조는 제 구상에 무엇을 뜻할까요? 제가 원하는 것은 "엘리트와 대중이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한 층은 "우리는 안다", 한 층은 "그들은 믿는다"가 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아래 사람들이 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전체가 무너집니다. 제가 읽은 이 몇 가지 예, 로마의 시민 제사와 "최고 존재" 숭배에도 그 그림자가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순자가 말한 그 결말입니다. 글 읽는 사람부터 밭 가는 노인까지 모두가 그것을 "문"으로 여기는 것. 하나의 공경, 하나의 예, 날들에 무게를 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이지, 무엇을 얻어 내는 거래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천도를 두고 "공경하되 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공물을 받지 않고 간청을 듣지 않는 하늘에는 "속일" 것도 없고, 누가 대신 대중에게 "비밀을 지켜 줄"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습니다. 대심문관의 그 말을 저는 한 번에 반박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은 정말로 간청할 수 있는 신, 응답하고 위로해 주는 신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원하는 그것은 내가 줄 수 없고, 나는 말하지 않는 하늘 하나를 줄 수 있을 뿐이라고. 이것은 가벼운 질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질문을 바꿔 보고 싶습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 때 필요한 것은 자기에게 응답하는 신일까요, 곁에 있는 사람일까요? 예(禮)가 있는 공동체는 아마 뒤의 것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청명에 무덤 앞에 함께 서 주는 사람이 있고, 힘들 때 대신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있는 것. 이런 것은 속임수가 필요 없습니다. 진짜입니다.

이웃에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집안 어른을 위해, 자기는 믿지 않는 의례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해 보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 순간 여러분은 자기가 "속이고"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믿고" 있다고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보이려고, 나를 키워 준 그분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아마 이것이 순자가 말한 "문"일 것입니다. 한 사회가 모든 사람을 이렇게 행동하게, 이렇게 공경하게 할 수 있다면, 그 사회에는 아마 "대심문관"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안 어른을 위해, 자기는 믿지 않는 의례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참고 자료

  • 함께 읽기: 이 시리즈 〈"신사는 종교가 아니다"〉(국가신도는 "신도설교"의 근대판으로 읽을 수 있음)
  • 《순자·천론》
  • 《주역·관괘·단전》; 왕필 주
  • Polybius, Histories, VI.56
  • Augustine, De civitate Dei, IV.27 (바로와 스카이볼라를 옮긴 대목)
  • Dostoevsky, The Brothers Karamazov, Part II, Book V, ch. 5 "The Grand Inquisitor"
  • 루소 《사회계약론》(1762), 제4권 제8장 "시민 종교"; 로베스피에르 "최고 존재" 숭배(1794-05-07 법령, 1794-06-08 축제, 1794-07-27 실각): 통설
  • 《논어·팔일》 "祭如在, 祭神如神在"
  • 그림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적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