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쪽을 보는가
이 시리즈가 앞에서 쓴 곳은 중국, 한반도, 일본, 베트남입니다. 모두 한때 유교의 하늘 아래서 날들을 살았던 곳입니다.
동남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태국,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의 주류는 상좌부 불교이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주류는 이슬람입니다. 유교의 하늘은 이 나라들 자신의 하늘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하늘을 가지고 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인입니다.
그들은 남의 나라에 닿았고, 그들을 대신해 말해 줄 자기 나라는 없었으며, 때로는 자기 말조차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한 공동체는 무엇으로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의귀(依歸, 기대고 돌아갈 만한 믿음)"라는 말이 원래 묻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 주장, 그리고 그 범위
이 시리즈의 머리말에서 제 기울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유교를 종교화해서, 모든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하나의 종교적 의귀를, 구심력 하나를 주자는 것입니다. 이 구상을 저는 잠정적으로 "톈다오(天道)"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천도교와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주장은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대어 봐야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은 하나의 호칭일 뿐이고, 범유교 문화권에서 깊이 생각해 볼 마음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범위로 보면 이렇습니다.
- 태국인, 라오스인, 미얀마인, 크메르인은 그 안에 없습니다.
- 화인과 베트남인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몇 편은 "동남아 사람"에게 무슨 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두 집단에게만 물어봅니다. 화인과 베트남인에게.
몇 가지 규칙: 한 편마다 다섯 질문에 답한다
각 편은 이 다섯 가지에 답합니다.
- 역사: 그들이 어떻게 닿았고, 어떻게 대우받았는가.
- 도덕: 이 공동체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안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가. 사당인가, 선당(善堂)인가, 조상인가, 다른 무엇인가.
- 규율: 국가의 보호가 없을 때 무엇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가. 회관인가, 학교인가, 조직의 규약인가.
- 현황: 오늘 몇 사람이 있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미래: 다음 세대에 얼마나 남는가.
각 편에는 고정된 두 절이 따로 있습니다.
- 제 주장은 여기서 뭐라고 할까: 이 절은 제가 직접 쓰려고 비워 둡니다.
- 뒤집어 보면: 제 주장에 가장 단단한 반대편의 논리. 허수아비로 쓰지 않습니다.
표 하나
숫자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자릿수로만 보아 주십시오.
| 나라 | 화인 수 | 비율 | 비고 |
|---|---|---|---|
| 말레이시아 | — | 2020년 약 23.2%(1957년 37%) | 화인 교육(華敎) 체계가 가장 완전함 |
| 태국 | 약 950만(2012년 추정) | 11–14% | 동화 정도가 가장 높음 |
| 인도네시아 | 283만(2010년 센서스) | 약 1.2% | 1967–2000년 사이 공개적인 신앙과 풍속이 제한됨 |
| 베트남 | 749,466(2019년 센서스) | 0.78% | 외부 추정은 훨씬 높음; 1978–79년 약 45만 명이 떠남 |
| 캄보디아 | 추정 30만~70만 | — | 1975년 약 43만, 1979년까지 약 절반이 살아남지 못함 |
| 미얀마 | 싣지 않음 | — | 숫자 기준의 이견이 너무 큼 |

가장 단단한 반대편 논리를 먼저 여기에 놓는다
모든 편을 따라다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인이 동남아에서 만난 가장 무거운 비난은 "너희가 믿는 것이 틀렸다"가 아니라 "너희 마음은 여기에 있지 않다"였습니다.
20세기 초 태국의 라마 6세는 필명으로 글을 써서 화인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1967년 인도네시아의 신질서 정부는 화인에게 이름을 바꾸고, 화인 학교를 닫고, 제사를 집 안에 가두라고 요구했습니다. 같은 해 미얀마의 양곤에서는 반화인 폭동이 터졌는데, 중국 문화대혁명의 영향이 건너온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태국의 국왕 라마 6세(Vajiravudh, 1881–1925). 출처: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이 일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재국은 이 사람들에게 외국에 있는 "마음"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주장은 하필이면 바로 그들에게 구심력 하나를 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벽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5열"을 두려워하는 나라에서, 하나의 구심력은 약일까요, 구실일까요?
1955년 반둥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인도네시아는 《이중국적 조약》에 서명했고, 이중국적 화인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게 했습니다. 한 가지 읽기는 이웃나라의 의심을 풀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읽기는 이것이 포기라는 것입니다. 두 읽기는 인도네시아 편에 남겨 두겠습니다.

1955년 4월, 저우언라이, 네루, 우 누가 반둥 회의 중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이 벽에 대한 제 대답
제 대답은 두 길이고, 두 길뿐입니다.
하나는 충분히 강한 것. 어떤 종교가 충분히 강하다면 이슬람의 확장과 지배처럼 새로운 구심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단계에 이르면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비난은 더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곳의 사람들 자신이 하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충분히 강하지 못한 것. 그러면 동화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필리핀 편이 "두 길뿐"이라는 말에 문제 하나를 낼 것입니다.)
"충분함"의 판단 기준은 제가 네 가지로 정했습니다. 사람 수, 조직, 재력, 교의. 네 가지가 다 있어야 하고, 하나라도 빠지면 구심력이 서지 못합니다. 여기서 "지배"란 문화의 주도를 말하며, 정치권력이 아닙니다.
| 기준 | 물어야 할 것 |
|---|---|
| 사람 수 | 이 공동체에 몇 사람이 있고, 아직 느는가 |
| 조직 | 자기 사당, 회관, 학교, 선당이 있는가,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가 |
| 재력 | 앞의 둘을 유지할 자원이 있는가 |
| 교의 | 어느 한 나라에도 기대지 않는 "하늘"이 있어서, 왜 이 마음을 향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는가 |
각 편은 이 네 가지로 한 번씩 재 봅니다. 재지 못하는 것은 비워 두고, 비웠다고 적습니다.
이 대답은 역사에 비추어 시험해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뒤의 몇 편이 각자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두 번째 길은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 말레이시아: 첫 번째 길이 요구하는 "충분함". 화인의 인구 비율은 이미 37%에서 23.2%로 내려왔습니다.
- 캄보디아: 한 공동체가 절반을 빼앗겼을 때 "충분함"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분명히 말해 두겠습니다.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제가 "길은 둘뿐이다, 충분히 강하거나 동화되거나"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 동화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현지 사회에 녹아들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를 말하고 현지 이름을 쓰는 화인의 후손들을 평가하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의 날들은 그들 자신의 날들이지 실패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차가운 역사적 관찰입니다. 나라가 없고 사람 수도 적은 공동체가 자기 말과 조상의 예를 지키려 할 때, 역사에서는 대개 이 두 가지 결말이 있었다는 것.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세 번째 길은 없을까? 사람 수도 나라도 없는 공동체가 다른 무엇으로, 날마다 하는 작은 일들로 자기를 지키면서도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이것이 제가 정말 묻고 싶은 것입니다.
다음 글들
- 캄보디아: 절반의 사람들
- 베트남: 바다로 떠난 뒤
- 인도네시아: 허락된 것과 빼앗긴 것
- 태국: 가장 성공한 동화는 하나의 의귀라고 할 수 있을까
- 미얀마: 건륭제가 이기지 못한 이웃, 그리고 남은 사람들
- 말레이시아: 화인 교육(華敎), 학교로 목숨을 이어 가는 공동체
- 태·라오와 좡·다이·먀오: 같은 어족, 각자의 하늘
- 싱가포르: 국가가 유교를 한 번 밀었다가 거두다
- 필리핀: 나라의 엘리트가 되었을 때, 화인은 여전히 화인인가
- 홍콩: 등록하되 금지하지는 않는다
뒤집어 보면
이 시리즈의 방향에 대해서도 되물을 수 있습니다. 왜 "의귀"라는 말을 쓰는가?
대부분의 동남아 화인에게 날들의 일이란 내일의 장사이지 "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가 아닙니다. 이 질문은 글 쓰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남쪽의 이웃에게 씁니다. 여러분은 방콕,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프놈펜, 양곤, 마닐라에서 자라셨을지도 모릅니다. 집안 어른은 제가 알아듣지 못하는 차오저우(潮州)말, 하카(客家)말, 푸젠(福建)말을 하셨을지도 모르고, 여러분 자신은 이미 한마디도 못 하실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아마 이런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너희 마음은 여기 있지 않다.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해마다 청명에 조상의 무덤 앞에, 혹은 신단 앞에 서 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서 계신 바로 그 땅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아직 화인인지가 아니라, 이 몇 가지뿐입니다. 조부모님이 그 부두에서 어떻게 배를 내리셨는지, 집의 신단에는 누구를 모셨는지, 해마다 청명을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런 것들은 어떤 "의귀"의 큰 이론보다도 더 진짜입니다. 저는 이것을 적어서, 더 많은 사람이, 여러분의 아이들까지도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나라가 대신 말해 주지 않을 때, 한 공동체는 무엇으로 "우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참고 자료
- 라마 6세의 "동양의 유대인": 필명으로 썼으며, 학자들 사이에 그 뜻에 대한 논쟁이 있음
- 1955년 《중국–인도네시아 이중국적 문제에 관한 조약》(저우언라이, 수나리오, 1960년 1월 20일 발효)
- 그림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적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