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왕의 아버지

1767년 아유타야 왕조가 미얀마에 멸망했습니다. 이듬해 탁신(鄭信)이라는 사람이 톤부리에서 시암을 다시 세웠습니다.

탁신의 아버지는 차오산(潮汕) 청하이(澄海) 사람으로, 시암에서 세리(稅吏)로 일했고, 어머니는 태국인이었습니다. 탁신 이후는 짜끄리 왕조, 곧 오늘날 태국 왕실이고, 그 창건자 라마 1세도 화인의 피가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태국에서 "화인"과 "왕실"은 완전히 갈라진 두 낱말이 아닙니다.

톤부리의 탁신 대왕 기념상

톤부리의 탁신 대왕(King Taksin)과 프라야 피차이 기념상. 출처: Wikimedia Commons, Tmd, CC BY-SA 4.0

네 세대

미국 학자 윌리엄 스키너(William Skinner)가 태국의 화인을 연구했습니다. 그가 "동화의 완성"에 내린 정의는 소박합니다. 한 사람이 거의 모든 자리에서 스스로를 태국인으로 여기고, 습관적으로 유창하게 태국어를 쓰고, 태국인과 더 많이 어울리기를 택하는 것.

그의 판단은, 네 세대 안에 태국의 화인은 완전히 동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태국의 화인은 총인구의 11%에서 14%, 약 950만 명입니다(2012년 추정). 그 가운데 큰 부분이 이미 중국어를 못 하고, 스스로를 "화인"이라고도 여기지 않습니다.

방콕 야오와랏 거리

방콕의 야오와랏 거리, 화인이 모여 사는 오래된 길. 출처: Wikimedia Commons, Marcin Konsek, CC BY-SA 4.0

나라는 어떻게 했나

태국에서 동화는 모두 저절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라도 한 번 밀었습니다.

1914년 국왕 라마 6세가 필명(Asvabahu)으로 글을 써서 화인을 "동양의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인종주의라고 보는 사람이 있고, 그가 걱정한 것은 공화주의가 태국에 퍼지는 일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1938년부터 1957년까지(중간에 4년 가까운 중단이 있었습니다) 피분 정부는 "태국화"를 밀어붙였습니다. 화인 학교를 닫았고, 중국어 서적과 신문을 금지했고, 태국식 복장을 강제했고, 화인의 업종을 국유화했고, 중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범죄로 정했으며, 여전히 "화인의 특징"을 드러내는 사람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피분은 화인을 내쫓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원한 것은 동화였습니다.

선당

그래도 태국의 화인 공동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가 남았습니다.

1909년 화상 열두 명이 방콕에서 "보덕선당(報德善堂)"이라는 단체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이 한 일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주인 없는 시신을 거두어 안장하는 것. 나중에 이곳은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구조 단체가 되어 교통사고 부상자를 처리합니다.

나라가 대신 말해 주지 않는 공동체가, 그런데도 먼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의 시신을 거두었습니다.

방콕의 화교 보덕선당

방콕의 화교 보덕선당 건물. 간판에 태국어와 중국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Sry85, CC BY-SA 3.0

여기까지 읽으면 저는 코끝이 조금 시큰해집니다. 그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자기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먼저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길가에 아무도 거두지 않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대로 눕혀 둘 수는 없다. 저는 이것이 어떤 "화인"의 정의보다도 "우리"라는 말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화인의 사당 가운데 많은 곳이 여전히 대승불교·유교·도교가 섞인 전통을 지키고 있고, 태국의 상좌부 사원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만 스키너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2세 태국계 화인은 화인 사당에 가는 일이 점점 줄었다. 상좌부 불교가 이미 그들의 정신적 필요를 채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콕의 룽롄사(龍蓮寺)

방콕 차이나타운의 왓 망꼰 까말라왓(Wat Mangkon Kamalawat), 화인의 대승 불교 사원. 출처: Wikimedia Commons, Alan Oscroft, 퍼블릭 도메인

현황과 미래

혼인의 비율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높습니다.

태국에서 "화인"이라는 신분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희석되었습니다.

누가 생각해 낸 방법인가

저는 한때 이런 짐작을 했습니다. 태국의 이 "동화의 방법"은 차오산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닐까.

이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연구가 말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혼인의 전통, "태국화"에 대한 나라의 장려, 그리고 뒤의 여러 세대가 스스로 한 선택.

이 짐작은 일단 접어 두고 결론에는 쓰지 않겠습니다.

네 가지 기준으로 재 본다

  • 사람 수: 약 950만, 11%에서 14%(2012년 추정).
  • 조직: 보덕선당, 1909년부터. 화인 사당은 남아 있지만 스키너는 2세가 점점 덜 간다고 함.
  • 재력: 믿을 만한 숫자가 없어서 쓰지 않음.
  • 교의: 화인 사당은 대승불교·유교·도교가 섞인 전통으로 통일된 교의가 없음. 상좌부 불교가 주류인 나라에서 젊은 세대는 흔히 현지 불교로 옮겨 감.

네 가지 중 사람 수와 조직은 다 있고, 교의가 희석된 쪽입니다. 이런 사례는 제 주장에 매우 중요합니다.

제 주장은 여기서 뭐라고 하나

태국의 화인은 네 세대를 들여 "의심받지 않는" 자리를 얻었습니다. 제 주장이 그들에게 통일된 구심력을 준다면 그들이 왜 그것을 원해야 할까요?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미 잘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당신에게는 이게 모자랍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더 작은 한 가지입니다. 언젠가 할머니의 신단이 떠오르고, 청명날 집안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생각나서, 누군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면, 열려 있는 문이 하나 있다는 것. 이것은 당신에게 태국인이기를 그만두라고도, 중국어를 하라고도, 어떤 "조직"에 가라고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쓸 수 있는 날들일 뿐입니다. 제사, 청명, 설, 하늘에 대한 약간의 공경. 아마 이것이 태국의 화인에게 그들을 가장 방해하지 않는 유일한 방식일 것입니다. 이것은 "구심"의 힘이 아니라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뒤집어 보면

가장 단단한 반대편 논리는 위에 이미 있습니다. 스키너의 "네 세대 동화"는 실패가 아니라 한 공동체가 한 나라 안에서 고른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

한 태국 화인에게 "저는 태국인이고, 제 조상은 차오산 사람이고, 저희 집에는 제사를 지내는 신단이 있습니다"라는 말은 이미 완전한 의귀입니다. 제 주장이 "당신에게는 구심력이 하나 모자랍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되물을 것입니다. 어디를 향해서요?

태국의 벗들에게 씁니다. 여러분의 나라는 오랜 세월 화인을 내쫓지 않았고, 한 세대 한 세대 서서히 여러분의 일부가 되게 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화"라는 말이 양쪽 모두에게 조금 아프다는 것을 압니다. 동화된 사람은 무언가를 잃었고, 동화시킨 사람은 어쩌면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1909년 방콕의 화상 열두 명은 자기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으면서, 길가에 아무도 거두지 않은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 보덕선당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그 건물 간판에는 태국어와 중국어가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태국 사람과 화인이 함께 이룬 일이고, 한 나라가 모두 그것을 존경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의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족속인지를 가리지 않고, 이 일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 속하는 의귀입니다.


한 공동체가 네 세대에 걸쳐 한 나라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살아남았다"고 해야 할까요?


참고 자료

  • 함께 읽기: 이 시리즈 〈남쪽의 이웃〉(서문), 〈건륭제가 이기지 못한 이웃〉(미얀마); 《의귀》 〈종친회의 황혼〉
  • 태국: 탁신(Taksin)의 아버지는 청하이 차오산 사람; 라마 1세 "화인의 피가 있음"; 화인 약 950만, 11–14%(2012년 추정), 1932년에 12% 초과; 스키너의 "동화" 정의와 "네 세대" 판단; 라마 6세 필명 글 "동양의 유대인"(학자들의 논쟁 포함); 피분 1938–1957년 태국화 정책; 1909년 보덕선당(화상 12명 발의); 혼인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보다 높음
  • 1767년 아유타야 왕조가 미얀마에 멸망, 탁신이 이듬해 톤부리에서 재건: 통설
  • 그림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적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