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은 사람은 왜 뜨는지 알지 못했다

이십 년 가까이 전, 인터넷에 『홍루몽』의 '후이십팔회'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말인즉 이것은 오래된 필사본으로 조설근이 원래 쓴 결말이 남아 있어 우리가 읽어 온 정고본 후사십회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책에 "계유 섣달 전서 등청(全書謄淸)"이라는 비어(批語)가 한 줄 있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계유본'이라 불렀습니다.

그 후이십팔회는 아주 참혹하게 쓰여 있고 정고본 결말의 "난계제방(蘭桂齊芳)" 같은 마무리가 없습니다. 읽고 나서 이것이 조설근 마음속의 결말에 더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개기 『홍루몽도영』의 교저

청대 개기(改琦)의 『홍루몽도영』에 있는 교저(巧姐). 정고본에서 그녀는 마지막에 시골의 부유한 집에 시집가 자리를 얻습니다. 계유본이 그녀에게 주는 결말은 훨씬 참혹합니다. 이백 년 넘게 독자들은 이 소녀들을 위해 결말을 다투어 왔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개기 그림, 퍼블릭 도메인

2018년 2월 『광명일보』 기자 류젠(劉劍)이 이 책을 내놓은 사람, 인터넷 이름 '허리리(何莉莉)'를 찾아갔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기자가 확인을 요구하자 허리리는 "이 두 비어는 모두 자신이 위조한 것이며 자신도 그것을 매우 후회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합니다. 책 제목 '오씨 석두기 증산 시평본'도 지어낸 것이고 처음에 쓴 것은 "책을 좀 더 팔고 싶어서"였습니다. 보도는 2014년의 그의 말도 전합니다. 원래 필사본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인터넷에 도는 후이십팔회는 "그가 기억에 의지해 복원한 줄거리이며,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여러 번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공정을 위해 한마디 덧붙여야 합니다. 그는 동시에 필사본을 위조했을 가능성은 없고, 필사본은 정말 있었지만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뿐이라고도 밝혔습니다.

보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이 말입니다.

"후28회의 내용은 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피비린내 납니다. 저는 그 줄거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 판본이 왜 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놓은 사람이 스스로 좋아하지 않았고, 왜 뜨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뜨게 한 것은 읽는 사람들뿐입니다. 곧 우리입니다.

하나의 원고, 하나의 참 아버지, 하나의 논쟁

계유본은 외로운 사례가 아닙니다. 최근 몇 해 중국어 인터넷에서 가장 널리 퍼진 몇 가지 '비본', '비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 매우 닮았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의 원고. 위에서 말한 계유본입니다. 조설근의 진짜 결말은 줄곧 있었는데 감추어졌고, 우리가 이백 년 넘게 읽은 것은 누군가 고친 판본이다.

하나의 참 아버지. 2025년 11월 오래된 설 하나가 갑자기 인터넷에서 불붙었습니다. 강희제의 친아버지는 사실 청에 항복한 명의 대신 홍승주(洪承疇)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희 이후 자금성에 앉은 이는 사실 한인의 핏줄이다. 이 일은 《의귀》 쪽에서 한 편을 썼으니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홍승주 초상

홍승주 초상, 요내(姚鼐)가 1771년에 제(題)한 것. 그는 명의 계요총독으로 송금 전투에서 사로잡혀 청에 항복했고 훗날 청을 위해 남방의 대부분을 평정했습니다. 삼백 년 남짓 뒤 인터넷에서 그를 강희의 친아버지로 삼으려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난징박물원 소장, 퍼블릭 도메인

하나의 논쟁. 인터넷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돕니다. 태평천국 때 서양 선교사가 천경에 와서 홍수전과 성경을 놓고 논쟁했는데 그에게 말문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기록을 조사해 보면 선교사들이 남긴 것은 충격과 실망입니다. 태평천국이 정식으로 천경에 초청한 미국인 선교사 로버츠(羅孝全)는 1862년 천경을 떠날 때 이미 매우 반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천경을 다녀간 선교사는 적지 않지만 패배를 인정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 이야기, 하나는 소설 이야기, 하나는 황제 이야기, 하나는 종교 이야기로 언뜻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뼈대는 같습니다.

진짜는 줄곧 있었는데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모두가 보는 '정본'은 덮개이고, 극소수의 사람만이 감추어진 것을 읽어 낼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이 이야기들을 저는 모두 진지하게 읽었고 일부는 꽤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높은 곳에서 누구를 비웃을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들이 왜 이렇게 믿기 쉬운가입니다.

나 자신도 믿는 사람이다

웃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계유본을 저는 오늘도 믿는 쪽으로 기웁니다.

제가 믿는 것은 그 문장이 아닙니다. 문장은 확실히 많은 곳이 거칠고, 정고본과 맞는 대목도 있고, 오늘의 표준 중국어 운으로 압운한 곳도 있으며, 그런 것은 모두 보았고 인정합니다. 미인은 뼈에 있지 가죽에 있지 않습니다. 문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그 뼈대입니다. 가씨 집안이 어떻게 몰락했는가, 그 소녀들이 각자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가, 책 전체가 마지막에 어디로 가는가. 그 뼈대의 뜻은 한 집안의 흥망이나 남녀 간의 정애보다 한 단계 높습니다. 나중에 책을 엮어 팔려는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견해는 이렇습니다. 그 뼈대는 조설근 자신의 다듬기보다 이르고 주체는 누가 고치지 않았다. 문장에는 후세 사람이 보태 넣은 것이 많다.

이것이 한 독서인의 판단이지 판본학의 증거가 아님을 압니다. 이 시리즈 뒤쪽의 계유본을 다루는 몇 편에서 증거와 반대편을 하나하나 놓겠습니다. 저에게 불리한 것도 포함해서. 저는 저 자신을 '우리' 안에 둡니다. 그래야 해체해 나갈 때 남을 비웃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한 겹 한 겹 자라난 것

백 년 전 역사학자 구제강(顧頡剛)이 편지 한 통을 썼고 훗날 아주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중국의 고사(古史)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졌다"고 하며 세 가지 뜻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시대가 내려올수록 전설의 고사 시기는 길어진다". 주나라 사람 마음속에 가장 오래된 사람은 우(禹)였는데 뒤에 요순이 생기고 그 뒤에 황제, 신농이 생겼습니다. 내려올수록 고사는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전설 속의 중심 인물은 더 크게 늘려진다". 한 인물은 한 대를 전해질 때마다 몸에 붙은 이야기가 한 겹 늘어납니다.

셋은, 우리가 "어떤 일의 참된 모습은 알 수 없어도, 어떤 일이 전설 속에서 가장 처음 어떠했는지는 알 수 있다".

구제강

구제강, 1924년. '층루(層累)'설을 내놓던 해 그는 서른 살이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구제강이 말한 것은 상고사이지만 이 세 조항은 오늘의 위사를 보는 데도 잘 맞습니다.

홍청(洪清) 가설도 이렇게 한 겹 한 겹 자랐습니다. 청초에 이미 "효장태후가 도르곤에게 하가했다"고 비꼬는 시를 쓴 사람이 있었고 민국 때 역사학자 멍선(孟森)이 특별히 글을 써서 반박했습니다. 청말민초에는 "건륭은 하이닝 천씨 집안의 아들"이라고 전해졌고, 2025년에 이르러 주인공이 홍승주로 바뀌었습니다. 이야기 속 사람은 줄곧 바뀌었고 뼈대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청 황제는 사실 한인의 핏줄이다.

세 번째가 보통 독자인 우리에게 가장 쓸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은 일에서 우리는 정말 '참된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말이 가장 처음 어디서 나왔는지, 나중에 누가 무엇을 보탰는지는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대부분의 글이 하는 일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왜 믿는가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많이 연구해 왔습니다. 영국 켄트 대학의 카렌 더글러스 등은 2017년에 사람들이 왜 음모론을 믿는지를 논한 종설을 썼습니다. 그들의 결론의 대의는, 믿도록 사람을 떠미는 데에 세 가지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아래는 제 번역입니다).

하나는 인지적인 것,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고 싶다. 하나는 존재적인 것, 이 환경에서 안전하고 통제감을 갖고 싶다. 또 하나는 사회적인 것, 자신과 자기 집단의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다.

그들이 연구한 것은 음모론, 곧 큰 사건을 권력자의 배후 모의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위사는 전부 같지는 않지만 많은 곳에서 통합니다.

어떤 아픔을 받아 주는가

이 세 가지 필요를 위의 세 이야기에 대어 보면 각자 무언가를 받아 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계유본이 받아 주는 것은 아쉬움입니다. 『홍루몽』은 다 쓰이지 않았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이백 년 넘게 붙들어 왔습니다. 진짜 결말은 아직 있고 감추어져 있을 뿐이라고 누가 말해 주면 "그냥 다 못 썼다"보다 훨씬 견디기 쉽습니다.

홍청 가설이 받아 주는 것은 입 밖에 내기 어려운 아픔입니다. 1644년 이후의 체발과 복식 변경은 정말 있었던 일입니다. 용상에 앉은 이가 사실 한인이었다면 그 역사가 그렇게 철저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깎인 머리카락도 어둠 속에서 조금 보상된 셈이 됩니다. 쉽게 말해 '한(漢)' 한 글자가 삼백 년 동안 제 땅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입에 올리려면 "대한족주의가 아니다"라고 먼저 해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답답함은 진짜이고 홍청 가설은 그것에 출구를 주었을 뿐입니다.

논쟁 이야기가 받아 주는 것은 근대 이래의 한숨입니다. 남의 배와 대포에 나라의 문이 열린 뒤, 우리 쪽 사람이 이치로 한 번 이겼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기운이 납니다.

더글러스 등은 논문에서, 일부 학자는 음모론이 나쁜 결과의 책임을 남에게 돌려 자신과 집단의 이미지를 지키게 해 준다고 본다고도 언급합니다. 이 이야기들이 위로하는 것은 모두 진짜 억울함입니다.

그러나 같은 논문에는 제가 오래 읽은 한 구절도 있습니다. 현재의 연구는 이런 설을 믿는 것이 정말 사람들의 이런 필요를 채워 주는지 보여 주지 못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매력적이지만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도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계유본을 믿어도 『홍루몽』은 여전히 다 쓰이지 않았습니다. 홍청 가설을 믿는다고 1644년이 없던 일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 억울함은 아직 있고 놓이는 자리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 시리즈를 어떻게 쓸 것인가

그래서 이 시리즈는 《비본》이라 합니다.

한 편에 널리 퍼진 하나의 말을 해체합니다. 그것이 가장 처음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한 겹 한 겹 자랐고, 왜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해체하는 것은 말이지 그것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각 편에는 "그들은 왜 믿는가"라는 절이 있어 이야기 뒤의 진짜 불안을 말합니다. 또 "뒤집어 보기"라는 절도 있고, 이 시리즈에서는 위사 쪽의 가장 힘 있는 논거를 최대한 늘어놓겠습니다. 가장 약한 것을 골라 치지 않습니다.

대략 이런 덩어리를 이야기합니다. 계유본 『홍루몽』, 홍청 가설, 그리고 최근 몇 해 아주 뜨거운 '서양 위사론', 곧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는 후세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는 한 갈래. 또 자기 경험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몇 가지 방법. 하나의 말의 가장 처음 출처를 어떻게 조사하는가, 하나의 판본이 다른 판본의 상류에 있는지 하류에 있는지 어떻게 보는가.

저는 다른 시리즈 《의귀》에서 화하 자신의 의귀(의지하고 돌아갈 믿음)를 줄곧 찾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쓰는 것은 사실 그 일의 나머지 절반입니다. 정말 설 수 있는 의귀는 믿을 만한 역사 위에 세워져야 하고, 감추어진 비본으로 떠받쳐서는 안 됩니다.

뒤집어 보기

첫째, 정본은 정말 고쳐진 적이 있고 비본이 때로 진짜일 수 있습니다. 청이 『사고전서』를 편찬할 때 고염무 『일지록』의 "강융이 서로 참칭하고"를 "전쟁이 날마다 다툰다"로 고치고 한 대목을 통째로 삭제했습니다. 이것은 한 글자씩 맞춰 볼 수 있는 진짜 삭개(削改)입니다. 그러니 "정본이 손을 탔을 것"이라 의심하는 것은 의심병이 아니라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위사론이 가장 힘 있는 곳이 여기입니다. 차이는 한 가지뿐입니다. 『일지록』의 원본은 내놓을 수 있고 맞춰 볼 수 있지만, 계유본의 필사본은 내놓은 사람 자신이 이미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고전서』 서영

『사고전서』의 한 책. 이 총서는 많은 고전을 보존했고 또 많은 고전을 삭개했습니다. "정본이 손을 탔다"고 한다면 가장 좋은 증거는 이것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둘째, '위사'라는 꼬리표도 잘못 쓰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설이 주류에게 위사라 불린다고 해서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고, 나중에 새 자료로 확인된 예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가능하면 먼저 판단을 내리지 않고 조사할 수 있는 증거를 늘어놓고, 조사할 수 없는 것은 조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셋째, 더글러스 등이 연구한 것은 주로 서양 사회에서 유행하는 음모론이고, 그것을 중국어 인터넷의 위사에 적용하는 것은 제 자신의 유추입니다. 중국 독자가 이런 이야기를 믿는 데는 그 논문이 다루지 않은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뒤의 글에서 천천히 보충하겠습니다.


당신이 줄곧 믿어 온 어떤 '비본'이 가짜로 증명된다면, 당신이 가장 놓기 아까운 것은 이야기 자체입니까, 아니면 그것이 한때 주었던 약간의 위로입니까?


참고 자료

  • 류젠 「'오씨 석두기'의 붕괴」, 『광명일보』 2018년 2월 27일
  • 구제강 「첸쉬안퉁 선생과 고사를 논하는 글」, 『독서잡지』 제9기, 1923년; 『고사변』 제1책 수록, 박사(樸社), 1926
  • Karen M. Douglas, Robbie M. Sutton, Aleksandra Cichocka, "The Psychology of Conspiracy Theories",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26(6), 2017
  • 고염무 『일지록』 「정시」 조 (황여성 집석본 권17; 사고전서본 권13)
  • 멍선 『청초 3대 의안 고실』, 1934
  • 그림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적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