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싱가포르에서 찍은 신약

1839년 싱가포르의 견하서원(堅夏書院)이 『구세주 예수 신유조서(救世主耶穌新遺詔書)』라는 신약성서를 펴냈습니다. 번역자는 프로이센 선교사 귀츨라프로, 앞 글에서 성서에 "상제(上帝)"라는 말을 써넣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귀츨라프

카를 귀츨라프(Karl Gützlaff, 1803–1851), 프로이센 선교사. 출처: Wikimedia Commons, 웨일스 국립도서관 소장, 퍼블릭 도메인

이 책의 「히브리서」 7장, 처음 세 절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昔亚伯拉罕败列王而凯旋,遇撒冷之王,至上帝之祭司,麦基洗德,蒙其祝福。" (옛날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무찌르고 개선하다가, 살렘의 왕이자 상제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나 그의 축복을 받았다.)

"夫麦基洗德译名本乃义王,又撒冷之王,即平王。" (멜기세덱은 이름을 번역하면 본래 의로운 왕이요, 또 살렘의 왕이니, 곧 평화의 왕이다.)

"其无父,无母,亦无族谱,无始日,无终生,成如上帝之子,永为祭司也。" (그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으며, 날의 시작도 없고 생의 끝도 없어, 상제의 아들과 같이 되어 영원히 제사장이다.)

팔 년 뒤, 이 책의 한 판본이 홍수전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성서 속에서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

멜기세덱은 성서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몇몇 왕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맞이하며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줍니다. 그 뒤로 이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천 년이 넘게 지나,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를 다시 꺼내 이천 년 동안 사람들이 되새겨 온 말을 합니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가 없고, 족보가 없고, 생의 시작도 없고, 목숨의 끝도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영원히 제사장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요. 천사라는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그저 평범한 가나안의 작은 나라 왕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은 줄줄이 나왔지만 모두를 납득시킨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

프랑스 화가 라이르가 그린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 빵과 포도주를 들고 마주 나온 이가 살렘 왕 멜기세덱이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로랑 드 라 이르, 퍼블릭 도메인

이것이 성서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빈자리입니다.

홍수전은 곁에 한 줄을 적었다

홍수전의 독법은 곧바로였습니다.

유럽 서적에 실린 홍수전 초상

유럽 서적에 실린 홍수전 초상. 설명은 본인이라고 "전해진다"고 하나 진위는 의심스럽다. 출처: Wikimedia Commons, Ford & West 석판, 퍼블릭 도메인

학자 리츠창(李熾昌)의 연구에 따르면, 홍수전은 훗날 태평천국이 인쇄한 성서에 미비(眉批), 곧 난외 주석을 달았습니다. 『창세기』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대목에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멜기세덱, "就是朕"(곧 짐이다). 자신이 젊은 날 하늘에서 내려와 보인 "실적"이며, 오늘 내려와 왕이 된다는 증거로 삼기에 딱 맞는다는 뜻입니다.

태평천국이 간행한 『구유조성서』 표지

태평천국이 간행한 『구유조성서』 표지. "태평천국 계호 3년 신각(新刻)"이라고 적혀 있다. 홍수전의 미비는 이런 재인쇄 성서에 쓰였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도 어머니도 족보도 내력도 없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 나타나도 말이 됩니다.

여기까지 읽고 마음이 조금 시큰해졌습니다. 홍수전은 과거에 네 번 떨어진 한미한 선비였습니다. 그 시대에는 한 사람의 출신, 족보, 과거 급제가 곧 그의 "내력"의 전부였는데 그에게는 그중 어느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이 번역한 책에서, 그런 것 하나 없이도 제사장이 되고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한 구절 더 눈여겨볼 만합니다. 귀츨라프 번역본에는 "살렘의 왕, 곧 평왕(平王)"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살렘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홍수전이 "평왕"이라는 두 글자를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그가 나중에 세운 나라의 이름이 태평천국이었다는 것만 압니다.

그는 상대 자신의 책을 썼다

이 일에서 마음이 불편한 점은 홍수전의 배짱이 아니라 그의 방법입니다.

"아버지 없고, 어머니 없고, 족보 없고"는 선교사가 직접 번역한 것이고, "상제의 아들"이라는 말도 선교사가 직접 고른 것입니다. 홍수전은 한 글자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건네받은 본문을 글자 그대로 읽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글자 그대로 경전을 읽는 것은 바로 개신교 선교사들이 중국 신도에게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가톨릭이 해석권을 교회가 쥐고 있는 것에 반대하며 누구나 스스로 경전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홍수전은 바로 그렇게 했고, 읽다가 이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들은 아무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톨릭도 개신교도 그의 교리를 이단으로 판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반박하려면 먼저 한 가지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같은 책을 당신들은 그렇게 읽어도 되는데, 왜 그는 그렇게 읽으면 안 되는가.

뒤집어 보기

정통 신학에는 사실 답이 있습니다. "예표(豫表)"라고 합니다.

이 독법에서 멜기세덱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예표", 곧 그리스도의 모습을 미리 그려 낸 구약의 인물입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족보도 없다"는 것은 성서에 그의 족보 기록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은 레위 지파 출신으로 족보를 따질 수 있어야 하는데, 멜기세덱은 족보에 기대지 않고 제사장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로 이 "기록의 공백"으로 논지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같다"는 비유이지 신분이 아닙니다.

이 흐름대로라면 홍수전에게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정말 시작도 끝도 없다면, 어떻게 『창세기』에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성을 나와 아브라함의 십분의 일을 받겠는가? 그에게는 몸이 있고, 도시국가가 있고, 구체적인 어느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당신이 쓴 구절은 쓴 사람의 논증 방향이 당신과 정반대입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홍수전의 "천상의 가족"은 1837년의 이상한 꿈에서 처음 나타났고, 1848년에 쓰인 『태평천일』이 그 꿈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성서에 미비를 단 것은 1860년 태평천국이 성서를 다시 찍을 때에야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꿈이 먼저고 경문 찾기는 나중입니다. 경문은 환상을 본 원천이 아니라 나중에 환상을 추인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러니 빈자리가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가 먼저 자리를 갖고 있다가 책 속에서 빈자리를 찾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덧붙여

인터넷에는 홍수전의 주석이라며 "麦基洗德实朕全"이라는 한 구절이 떠돕니다.

이 구절의 일차 출처는 찾지 못했습니다. 학술 문헌에서 추적되는 것은 두 가지 판본으로, 하나는 『창세기』에, 다른 하나는 『히브리서』에 쓰였고 표현도 다릅니다. 그 여섯 글자 명구는 아마 후세의 요약이 전해지다가 원문처럼 취급된 것일 겁니다.

"족보 없는 사람"의 이야기가 스스로도 내력을 알 수 없는 전언 하나를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면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경고로 들려줍니다. 경전에 빈자리를 남기는 것이 안 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 자기가 거기에 앉을 수 있다고 여기고 "이것이 나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뒤의 일은 사람의 손을 떠납니다. 홍수전이 앉은 뒤 그 자신의 말이 가장 높은 말이 되었고, 양수청은 천부의 입을 빌려 천왕을 누를 수 있었으며, 마침내 구약도 신약도 "기록이 잘못된 곳이 많으니 잘못은 고쳐야 한다"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그렇게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바라는 것을 구상할 때 이 빈자리를 일부러 남겨 두지 않습니다.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이렇습니다. 천도(天道)는 말하지 않는 최고의 신격이어서 강림하지도, 빙의하지도, 누구에게 뜻을 내리지도 않으며, 공경하면 되고 빌 필요는 없다. 공자는 선사(先師), 곧 정리하고 전한 사람이지 천계를 받은 사람이 아니며, "이것은 하늘이 직접 내게 일러 주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양쪽 끝을 막으면 "짐이 곧 그다"라고 나설 사람이 없어집니다. 이것으로 만무일실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경문 한 구절을 들고 나라 하나를 끌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책 한 권에 빈자리가 남아 있다면, 누가 거기에 앉을 자격이 있는가?


참고 자료

  • 『구세주 예수 신유조서』, 귀츨라프 번역, 1839년 싱가포르 견하서원 간행(타이완 "신망애(信望愛)" 진본 성서 디지털 장서 시스템, 저본은 호주 국립도서관 소장)
  • 모리슨·밀른 번역본 「히브리서」 7:3(같은 시스템, 대조용)
  • 리츠창(李熾昌), 「『성서』재중국——태평천국대경문적전석」, 『선전대학학보』(인문사회과학판) 2009년 제6기
  • 자오샤오양(趙曉陽), 「태평천국간인성서저본원류고석」, 『청사연구』 2010년 제3기
  • 『태평천일』, 1848
  • 『창세기』 14장; 『히브리서』 7장
  • 이미지 출처는 각 그림 설명에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