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standalone="yes"?><rss version="2.0"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channel><title>《의귀》 ― 중국의 천국과 천하 on TenTao</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link><description>Recent content in 《의귀》 ― 중국의 천국과 천하 on TenTao</description><generator>Hugo</generator><language>ko</language><atom:link href="https://tentao.pages.dev/ko/yigui/index.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한 민족은 무엇으로 하나가 되는가</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00/</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00/</guid><description>&lt;h2 id="먼저-머리카락-이야기부터"&gt;먼저 머리카락 이야기부터&lt;/h2&gt;&#10;&lt;p&gt;1644년 5월 초, 청군이 베이징에 들어왔습니다. 섭정왕 도르곤은 입성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영을 내렸습니다. 투항한 관리와 군인, 백성은 모두 머리를 깎고 &amp;quot;의관은 모두 본조의 제도를 따르라&amp;quot;고 했습니다.&lt;/p&gt;&#10;&lt;p&gt;그런데 한 달이 채 못 된 5월 24일, 그는 이 영을 거두어들이며, 이제부터 &amp;quot;천하의 신민은 예전처럼 머리를 묶고 모두 편한 대로 하라&amp;quot;고 했습니다. 반발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막 입성한 터라 아직 발밑이 단단하지 않았겠지요.&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명교는 잃었어도 의관은 남았다</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01/</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01/</guid><description>&lt;h2 id="호胡라는-글자를-말하지-못하게-한-황제"&gt;'호(胡)'라는 글자를 말하지 못하게 한 황제&lt;/h2&gt;&#10;&lt;p&gt;319년, 갈(羯)족의 석륵(石勒)은 양국(襄國)에서 조왕(趙王)을 칭했습니다. 그해 그는 호인(胡人)을 앞으로 '국인(國人)'이라 부르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뒤에 궁전이 완성되고 법령이 엄해지면서 그 가운데 &amp;quot;호 자를 휘(諱)하기가 더욱 엄하다&amp;quot;는 조항이 생겼습니다. 다른 글자는 봐줄 수 있어도 '호' 자만은 절대 입에 올려서는 안 되었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아버지도 어머니도 족보도 없이</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03/</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03/</guid><description>&lt;h2 id="1839년-싱가포르에서-찍은-신약"&gt;1839년 싱가포르에서 찍은 신약&lt;/h2&gt;&#10;&lt;p&gt;1839년 싱가포르의 견하서원(堅夏書院)이 『구세주 예수 신유조서(救世主耶穌新遺詔書)』라는 신약성서를 펴냈습니다. 번역자는 프로이센 선교사 귀츨라프로, 앞 글에서 성서에 &amp;quot;상제(上帝)&amp;quot;라는 말을 써넣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남방편: 후난과 장시, 사람들은 어떻게 오고 어떻게 떠났나</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xg00/</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xg00/</guid><description>&lt;p&gt;《의귀》의 앞선 많은 글은 대체로, 한 문명은 무엇으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가를 물었습니다. 남방편은 시각을 바꾸어 묻습니다. 사람이 흩어져 나가 다른 곳에서 다시 모일 때, 무엇을 지니고 가는가. 저는 그것을 후난과 장시 일대에 두고, 이주의 길을 따라 쓰촨, 양광(兩廣), 푸젠에도 가 보겠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난징을 열어 양재(洋財)를 얻었다: 이 돈은 따져 밝힐 필요 없다, 어디로 갔는지를 본다</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xg36/</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xg36/</guid><description>&lt;p&gt;어릴 때 어른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난징을 열어서 양재를 얻었다.&lt;/p&gt;&#10;&lt;p&gt;그 말을 한 사람은 학문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처마 밑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고, 뜻은 이 근방의 큰 집들은 난징에서 가져온 돈으로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줄곧 기억하고 있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장자는 도교에서 정말 지위가 낮은가</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118/</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118/</guid><description>&lt;h2 id="인터넷의-한-질문"&gt;인터넷의 한 질문&lt;/h2&gt;&#10;&lt;p&gt;인터넷에서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장자는 도교에서 이렇게 지위가 낮은가.&lt;/p&gt;&#10;&lt;p&gt;한 네티즌이 고문 네 곳을 늘어놓았습니다. 순자는 장자가 &amp;quot;하늘에 가려 사람을 알지 못한다&amp;quot;고 했다. 『장자·천하』에서는 장자와 노자가 따로 쓰여 있다. 왕희지는 『난정집서』에서 &amp;quot;생사를 하나로 보고 팽조와 요절을 같게 여긴다&amp;quot;를 허탄하고 망령된 것이라 꾸짖는다. 갈홍은 『포박자』에서 장자를 비판한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금나라의 한인은 송나라보다 잘 살았을까</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119/</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119/</guid><description>&lt;h2 id="인터넷의-한-질문"&gt;인터넷의 한 질문&lt;/h2&gt;&#10;&lt;p&gt;인터넷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여진족이 다스린 금나라에서는 한인이 송나라보다 잘 살았다는 말이 있는데, 믿습니까?&lt;/p&gt;&#10;&lt;p&gt;상위에 오른 답변 하나에 공감이 많았습니다. 글쓴이는 먼저 산둥 여인 양묘진(楊妙眞) 이야기를 합니다. &amp;quot;이화창(梨花槍)&amp;quot;을 쓰고, 척계광도 『기효신서』에 적은 사람입니다. 이어서 한 장면. 1220년 무렵 산둥과 장쑤 북부의 길에서, 금나라 때 부유했던 여진인과 거란인이 식솔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아나다 홍오군에게 포위되어 &amp;quot;늙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amp;quot;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원호문이 직접 보았기에 &amp;quot;도륙정진, 무복초류(屠戮淨盡, 無復噍類)&amp;quot;라고 썼다고 합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오늘 유가의 곤경: 타도된 것이 아니라 공급이 끊겼다</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120/</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120/</guid><description>&lt;h2 id="여러-해-동안-물어-온-질문"&gt;여러 해 동안 물어 온 질문&lt;/h2&gt;&#10;&lt;p&gt;즈후에 2025년에 이미 사람들이 묻고 있던 질문이 있습니다. 현대 중국에서 유가는 타도되었는가.&lt;/p&gt;&#10;&lt;p&gt;제가 읽을 때 답변은 549개라고 했고 볼 수 있는 것은 454개, 댓글은 육백여 개였습니다. 아주 전형적인 질문입니다. 누가 답해도 다툼이 납니다.&lt;/p&gt;&#10;&lt;p&gt;제가 보고 싶었던 것은 누가 옳은가가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두고 다투는가입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향토 중국은 언제 사라졌나</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121/</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121/</guid><description>&lt;h2 id="하나의-물음"&gt;하나의 물음&lt;/h2&gt;&#10;&lt;p&gt;요즘 마흔 즈음이 되면 나중에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채소를 심고, 닭 몇 마리를 키우고, 이웃은 다 아는 사람이고, 공기가 맑고, 느리게 사는 삶.&lt;/p&gt;&#10;&lt;p&gt;듣자마자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을의 인정(人情) 부담이 크고, 누가 집을 지었고 누구 아이가 시험을 잘 봤는지 모두 비교당합니다.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amp;quot;남이 없는 것을 비웃고, 남이 있는 것을 미워한다.&amp;quot; 게다가 병원은 멀고 자식들은 곁에 없습니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이웃의 마을도 비었다: 비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title><link>https://tentao.pages.dev/ko/yigui/e122/</link><pubDate>Tue, 13 Oct 2026 00:00:00 +0000</pubDate><guid>https://tentao.pages.dev/ko/yigui/e122/</guid><description>&lt;h2 id="확인할-수-있는-질문"&gt;확인할 수 있는 질문&lt;/h2&gt;&#10;&lt;p&gt;지난 글은 마지막에 질문 하나를 남겼습니다. 중국의 마을이 빈 것은 발전이 너무 빨라서인가, 아니면 파괴가 너무 철저해서인가.&lt;/p&gt;&#10;&lt;p&gt;두 설명은 이웃에 대해 다른 예측을 합니다.&lt;/p&gt;&#10;&lt;p&gt;&amp;quot;발전이 너무 빨랐다&amp;quot;면, 이웃의 마을도 허물어진 적이 있든 없든 똑같이 비고 늙을 것입니다.&lt;/p&gt;</description></item></channel></rss>